9장 기억 저편에
여름이 물러가고,
가을이 골목 안으로 들어왔다.
몇몇 나뭇잎은 서둘러 가장자리부터
노란 테를 두르기 시작했다.
바람에 마른 냄새가 섞였다.
햇빛이 한 뼘 짧아졌다.
냠냐미는 방석 위에서 잠들어 있었다.
고롱고롱.
✦
파란 꽃이 가득 핀 들판.
끝이 보이지 않았다.
바람이 불 때마다 꽃들이 일제히 한쪽으로 누웠다가 일어났다.
들판 한가운데, 아주 큰 나무 한 그루가 서 있었다.
가지가 길게 늘어진 나무였다.
잎이 바람도 없이 흔들렸다.
가사 없는 희미한 멜로디.
어쩐지, 아주 오래전부터 알던 노래 같았다.
✦
이 꽃.
냠냐미가 파란 꽃을 향해 다가갔다.
이름이...
뭐였냐미.
냠냐미는 손을 뻗었다.
꽃에 손이 닿기 직전.
✦
눈을 떴다.
‘?? 여기가 어디냐미?’
방석 위였다.
햇빛이 자리를 옮겨 있었다.
‘내 집이냐미...’
꿈이 빠르게 흐릿해졌다.
파란 꽃도, 큰 나무도, 멜로디도.
손가락 사이로 빠져나가는 모래처럼
순식간에 흘러내렸다.
손바닥에 자잘하게 남은 모래알처럼
입으로 자꾸 무언가를 중얼거렸다.
뭐였냐미...
냠냐미가 앞발로 눈을 비볐다.
‘이상한 꿈이냐미.’
머리 한구석이 간질거렸다.
잡으려 하면 사라지는 자리였다.
냠냐미가 자리에서 일어나 흥얼대기 시작했다.
(냐— 냐냐— 냐냐—)
‘옹?’
꿈에서 들은 가락과
요즘 만들던 노래와 어딘가 닮아 있었다.
(냐냐— 냐냑—)
막혔던 자리에 다다랐다.
여기.
여기가 자꾸 막히냐미.
몇 번을 다시 해봤지만, 잘 안 됐다.
같은 자리에서 자꾸 길을 잃었다.
✦
그때.
수풀 쪽에서 낮은 소리가 들렸다.
(그 멜로디,
거기서 그거 아니지 않아..?)
✦
냠냐미의 귀가 쫑긋했다.
뭐..뭐냐미?!
수풀을 봤다.
회색빛 털이 살짝 비쳤다.
에메랄드빛 눈 한 쌍이 빛났다.
...누가!!!!
함부로 이 몸의 작품에 토를 다냐미!
발끈한 냠냐미의 수염이 올라갔다.
✦
(......)
수풀 속에서는 대답이 없었다.
냠냐미가 씩씩대다가,
문득 멈췄다.
...여기서...
이게... 아니...냐미?
다시 흥얼대 봤다.
막혔던 자리에서,
이번엔 한 음을 다르게.
(냐냐— 냐냐~)
!!
오.
오오...!!
막혔던 자리가 스르르 이어졌다.
뭐냐미뭐냐미!
너 뭐냐..
(오드득.)
...미...?
사료 그릇 앞.
회색 고양이는 태연하게 냠냐미의 사료를 먹고 있었다.
오드득. 오드득.
얌얌이집이라는 명패와 그 고양이는
냠냐미보다도 더 자연스러워보였다.
✦
냠냐미의 눈이 동그래졌다.
너!!! 이 몸의 사료를!!!
허락도 안 받고 막 먹냐미..!!!!!
냠냐미가 팔짝팔짝 뛰었다.
회색 고양이가 고개를 한 번 들었다.
에메랄드빛 눈이 냠냐미를 쓱 봤다.
'여기 내 집인데.'
하는 눈빛처럼 느껴졌다.
그리고 별 대꾸 없이
수풀 속으로, 소리 없이 사라졌다.
✦
어... 없어졌냐미?
냠냐미가 수풀 앞에서 두리번거렸다.
아무것도 없었다.
사료가 눈에 띄게 줄어 있었다.
아니아니... 사료 도둑이 있었냐미!!!
원이가 사료 그릇 앞에서 자신을 보며
갸웃하던 모습이 생각났다.
‘사료가 적어진 게... 기분 탓이 아니었냐미..!’
그래서 요즘 사료가 빨리 줄었던 거냐미.
이거이거 냠냐미만 돼지고양이로 오해받겠냐미..!
쒸익쒸익.
씩씩대던 냠냐미는 줄어가는 냠냠볼을 세면서,
길바닥에서 하루하루 먹을 걱정을 했던 날들이 생각났다.
...뭐.
먹는 건 괜찮냐미!
하지만 원이가 있을 때 와서 먹으냐미!!
냠냐미는 너그럽게 넘어가기로 했다.
냠냐미가 다시 노래를 흥얼댔다.
(냐— 냐냐— 냐냐~ 냐냐~)
이번엔 막히지 않았다.
처음부터 끝까지, 가락이 쭉 이어졌다.
흥얼댈수록 꼬리 끝에 하늘빛이 돌았다.
앞발 끝과 뒷발 끝에도 같은 빛으로 물들었다.
그리고 이번엔 얼굴까지 줄무늬가 번졌다.
이마 위로 옅은 줄무늬 세줄이 떠올랐다.
하늘빛으로 빛났다.
냠냐미가 노래에 빠져 있을수록
줄무늬가 진해졌다.
✦
냐냐~!
마지막 음을 흥얼대던 냠냐미가 눈을 떴다.
양 볼 옆으로 하늘빛 줄무늬가 한 줄씩 번졌다.
와! 완성이냐미!!
가슴 안쪽이 꽉 찼다.
노래가 처음부터 끝까지 자기 몸안에서
혈관을 타고 흐르는 것 같았다.
‘펠다들에게 들려줄 노래가, 드디어..!’
지금 이 몸은 너무너무 행복하냐미~
(냐냐~~~)
✦
냠냐미가 최고로 행복한 그 순간.
냠냐미 옆에
파란 하트가 떠올랐다.
두둥.
파란 하트의 둥근 상단 양쪽에는
바짝 올라간 속눈썹 세개가 붙어 있었고,
양옆으로 작은 그림자날개가 보였다.
꿈에서 봤던 파란 꽃과 같은 색이었다.
파란 하트는
둥, 둥.
처음보다 아주 천천히
냠냐미 주위를 돌며 희미해지고 있었다.
냠냐미는 그릉대며 꼬리를 살랑거렸다.
골목 입구에 발소리가 났다.
발소리만으로 냠냐미는 이제
누가 오는지 알 수 있었다.
히히. 원이냐미!
“구미묘~”
왔냐미!
냠냐미가 폴짝 다가갔다.
✦
원이가 사료 그릇을 살폈다.
그러다 멈칫했다.
“어머... 벌써? 엄청 줄었네?”
그릇 안을 들여다봤다.
어! 나 아니냐미!
아까 그 회색빛 고양이가 몰래 먹고 갔냐미! (냐옹냐옹!)
“요즘 진짜 잘 먹네. 근데 어디 아픈 건 아니지?”
아니냐미!!
나 아니냐미~~!! (야옹 우와옹 우와옹)
냠냐미가 펄쩍펄쩍 뛰며 억울해했다.
사료 도둑이 따로 있다냐미!!
은빛 털에 초록 눈에— (와옹 와옹 와옹)
냠냐미가 털을 세우고 눈을 부라렸다.
“괜찮아 괜찮아. 잘했어.
잘 먹으면 좋은 거지~”
원이가 웃으며 사료를 채웠다.
진짜 나 아니냐미~~ (우에오오옹)
냠냐미는 세상 슬픈 얼굴을 하고,
홀쭉 집어넣은 배를 팡팡 쳤다.
“그래그래. 그렇게 먹고도 배가 고프다 이거지? 더 가져올게. 걱정 말고 먹어요~”
뿌...... !!!!! ! (웨에ㅔ엥옹 냐옹)
냠냐미의 주둥이가 삐죽 나왔다.
하지만 냠냐미의 억울함은 전해지지 않았다.
✦
원이가 사료를 갈아주려 쪼그려 앉았다.
그 순간이었다.
원이의 모습 위로,
하늘색 세잎클로버 잔상이 떠올랐다.
둥.
전보다 또렷했다.
그리고 냠냐미 옆에 둥둥 떠다니던
파란 하트 잔상이,
원이 머리 위에 비친 세잎클로버 잔상을 향해 천천히 움직였다.
✦
파란 하트는 네잎클로버의 마지막 잎처럼,
세잎클로버의 하트 잎이 모여 있는 곳에 자리를 맞추듯 들어갔다.
빛이 한 번 둥글게 번졌다.
그리고
원이의 발치, 풀밭 위에.
작은 네잎클로버 한 송이가 돋아났다.
푸른빛이 도는,
유난히 파란 네잎클로버였다.
✦
원이는 사료를 채우느라 보지 못했다.
냠냐미도 수풀 속을 노려보느라 보지 못했다.
파란 네잎클로버만, 풀밭에서 조용히 빛났다.
원이가 사료를 다 채우고 고개를 들었다.
아직도 주둥이가 나온 냠냐미와 눈이 마주쳤다.
“어?”
원이가 눈을 가늘게 떴다.
“너, 얼굴에.”
냠냐미가 갸웃했다.
냐?
“줄무늬 있었어?”
원이가 손을 자신의 이마와 볼을 찍었다.
냠냐미의 이마와 볼에는 옅은 하늘빛 줄무늬가 있었다.
“원래 없었잖아. 이거.”
아하 노래를 만들 때 이 몸은 더 예뻐지냐미~~! (냐냐)
냠냐미가 으쓱하며 노래하는 척을 하다가 예쁜척을 했다.
원이가 피식 웃었다.
“구미묘 씨~ 노래하면 더 예뻐지는구나?
나중에 노래 들려줘~~.”
‘내가 들은 소리가 냠냐미 노래가 맞나보다. 노래하는 고양이라니. 귀여워라.’
✦
“어? 꼬리랑.”
냠냐미의 풍성한 꼬리 끝이, 옅은 하늘빛이었다.
앞발도, 뒷발도. 끝이 물든 듯했다.
“발끝도 파랗네?”
히히. 예쁘냐미? (냐앙냐~)
“꼭 변신한 것 같다~.
곧 인간이 되시려나봐요. 흐흐.
구미묘 씨~ 인간 되면 저랑 다시 친구해주시나요?”
원이가 신기한 듯 가만히 쳐다보며 말했다.
당연하냐미~! (냐~~)
꼬리와 손과 발이 하늘빛으로 물들고
얼굴에도 줄무늬가 피었지만,
그 까만 눈만은.
아직, 그대로였다.
깊고 까맣게 빛나는 눈.
조금 뒤, 걸음 소리가 들렸다.
연이냐미! (냐아!)
“냠냐미~! 나 왔어!”
왔냐미!
✦
연이가 자리를 잡으며 두리번거렸다.
“근데 정이 씨는
오늘도 없네요?”
원이가 고개를 끄덕였다.
“요즘은 밖에서도
통 안 보이시네요.”
연이가 잠깐 생각하는 척을 했다.
“항상 뛰다 이 시간쯤 오시던 분인데, 무슨 일 있나...”
그러다 박수를 짝 쳤다.
“아, 우리 소풍 날짜 빼려고 미리 운동하시는 거 아닐까요 크크.”
✦
연이와 냠냐미의 눈이 마주쳤다.
“어?”
얼굴을 가까이 가져갔다.
“냠냐미, 얼굴에 줄무늬가 생겼네?”
냠냐미의 볼 줄무늬는, 아까보다 더 옅어져 있었다.
노래의 여운이 가라앉으면서, 빛도 함께 잦아든 모양이었다.
✦
“원이 씨 이거 봤어요?”
“네. 노래부르거나 하면 생기나봐요.
아까는 더 진했어요.”
“어머머~ 진짜 예쁘다~
무슨 화장한 것 같아.”
연이가 호들갑을 떨었다.
냠냐미는 먼곳을 보고 있었지만
귀는 계속해서 둘을 향해 있었다.
후후
냠냐미가 어깨를 으쓱했다.
✦
그때, 연이의 눈이 풀밭에 닿았다.
원이의 발치, 그 자리에.
“우와.”
✦
연이가 다가가 들여다봤다.
“네잎클로버다! 원이 씨 이것 좀 보세요!
와...색이... 신비로워요.”
원이도 다가가 들여다봤다.
“진짜네요. 엄청 푸르네요.”
“뽑아서 코팅하면 너무 예쁘겠다.”
연이가 손을 뻗다가 멈췄다.
“아차, 원이 씨도 갖고 싶으실 텐데.”
“아, 아녜요. 연이 씨가 발견한 걸요..!
...
엇 아니면 정이 씨도 보여주고 뽑는 건 어때요?
오늘도 안 오시려나..?”
냠냐미는 푸른 네잎클로버가 왜인지
꿈속의 파란 꽃의 색깔과 비슷하다고 생각했다.
‘꽃이 아니고 클로버였냐미..?
기억이 날랑말랑하냐미..’
연이가 하늘을 보며 말했다.
“아니다. 뽑으면 시들 텐데.
다른 사람들도 봐야지.
완전 세렌디피티. 크크”
“오~ 정말 세렌디피티네요! 뜻밖의 행운!
단어만 알고 대체 언제 쓰나 했더니, 오늘 써보네요.”
연이가 뽑으려고 뻗은 손을 다시 가져왔다.
“그냥 두죠. 보고 싶을 때 와서 보면 되니까.”
원이가 웃었다.
“그래요. 그게 낫겠어요. 너무 예쁘네요.
오늘 이 곳에 제가 있다는 게 참 행운이에요.”
✦
두 사람이 뽑지 않기를 선택한 파란 네잎클로버는,
그 자리에 그대로 남았다.
해가 기울기 시작했다.
원이와 연이가 돌아갈 채비를 했다.
“냠냐미, 또 올게~!”
“잘 있어~ 줄무늬 더 예뻐지고~”
연이가 손으로 볼을 톡톡 두드리며 인사했다.
원이도 손을 흔들며 인사했다.
✦
골목에 혼자 남은 냠냐미는
방석 위에 웅크려서 아침에 완성한 멜로디를 흥얼댔다.
‘입이 간지러워서 아주 혼이났냐미. 히히히’
노을이 막 지고 있었다.
‘정이는 요즘 바쁜가보냐미...
바쁜거 빨리 끝내고,
소풍 날에는 함께 했으면 좋겠냐미. 히히’
골목 입구에 발소리가 났다.
느릿하고, 조심스러운 발소리였다.
?! 정이냐미?!
냠냐미가 고개를 들었다.
야구 모자를 쓴 정이가 서 있었다.
✦
정이는 골목 안으로 들어오지 않고,
입구에 한참 서 있었다.
들어올까 말까 망설이는 사람처럼.
왔냐미!! 왜 이렇게 오랜만이냐미~! (냐앙)
냠냐미가 울자,
정이는 다가와, 냠냐미 앞에 쪼그려 앉았다.
“냠냐미.”
정이는 한동안 말이 없었다.
‘바위가 또 잔뜩 무거워져 있냐미...’
“...할 얘기가 있어서 왔어.”
평소보다 낮은 목소리가 이어졌다.
정이가 잠깐 말을 골랐다.
“아무래도, 생각을 좀 정리해야 할 것 같아서...”
정이는 고개를 푹 숙였다.
“앞으로, 여기 못 올 거야”
......
“미안해. 이런 식으로.”
마지막 말은 거의 들리지 않을 만큼 작았다.
✦
냠냐미는 정이를 물끄러미 봤다.
그리고 폴짝, 정이 무릎 가까이로 다가갔다.
‘바위를 앞으로 못 보는건 아쉽냐미..’
......
‘하지만,
정이가 행복한 것이 가장 좋냐미.’
냠냐미가 정이를 보며 울었다.
괜찮냐미~! (냐~)
정이가 고개를 들어 냠냐미를 봤다.
정이가 와준 날들,
냠냐미는 진짜진짜 좋았냐미! (냐~)
...그 시간은
정이가 안 와도 사라지지 않는 거냐미! (냐~)
정이는 그 말을 들을 수 없었다.
그래도 냠냐미는 끝까지 말했다.
냠냐미랑 펠다들은 걱정 말고,
정이의 행복만 생각해라냐미! (냐~)
✦
냠냐미가 앞발을 번쩍 들었다.
화이팅빔—! (냐~)
그리고 정이의 정수리에 콩, 하고 앞발을 얹었다.
✦
정이가 피식 웃었다.
왜 웃음이 나는지는 몰랐다.
하지만, 분명한건 눈앞에 작은 고양이가
자신에게 인사를 해주고 있다.
머리에 닿은 작은 무게가 따뜻했다.
“...고마워.”
너무 걱정 말라냐미~
잘 할 수 있냐미~
그리고 잘하지 못해도 괜찮냐미~
(냐아~~~)
냠냐미의 울음소리가 길게 들렸다.
정이가 가만히 귀를 기울였다.
‘잘하지 못해도 괜찮냐미~’
어쩐지, 그 말이 들리는 것 같았다.
정이가 일어섰다.
모자 챙을 만지는 손목에,
파스가 한 장 붙어 있었다.
“...잘 있어, 냠냐미.”
정이가 평소만큼의 속도로
골목을 빠져나갔다.
멀어지는 그 뒷모습을,
냠냐미는 골목 끝까지 바라봤다.
...정이, 아프지 마라냐미.
건강이 우선이냐미.
해가 완전히 떨어졌다.
그 순간.
풀밭의 파란 네잎클로버 위로
작은 날개 모양의 그림자가 클로버를 가만히 감쌌다.
감쌌던 날개가 천천히 열리다
클로버 네 장의 잎이 꽃잎처럼 가늘게 모이고, 줄기가 굵어졌다.
양쪽에 날개처럼 달려 있던 그림자가 잎사귀가 되어 줄기에 달라붙었다.
파란 꽃 한 송이.
어둠 속에서도 그 푸른빛은 유난히 빛났다.
✦
냠냐미가 그 빛에 고개를 돌렸다.
어?
풀밭에, 못 보던 꽃이 피어 있었다.
파란 꽃.
냠냐미가 천천히 다가갔다. 코를 가까이 가져갔다.
✦
이 꽃...
가슴 어딘가가 간질거렸다.
아침에 꾼 꿈이 스쳤다.
파란 꽃이 가득 핀 들판.
큰 나무.
가사 없는 멜로디.
꿈에서... 본 것 같냐미.
잡으려 하면 사라지는 자리였다.
냠냐미는 그 꽃을 한참 봤다.
✦
밤이 더 깊었다.
달이 한 뼘 더 차올라 있었다.
조금만 더 지나면 꽉 찰 것 같았다.
카드 위 잎의 푸르름이
가을이 한 발짝 다가올수록
두 발짝 도망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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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이 선선하게 불었다.
파란 꽃이 가만히 흔들렸다.
✦
자정 무렵,
꽃은 피어날 때처럼 조용히 빛을 거두며 사라졌다.
수풀 속에서
에메랄드빛 눈 한 쌍이,
그 빈자리를 오랫동안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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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장 「기억 저편에」 끝 · 10장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