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장 알려줘 너의 행복한 순간
늦여름 오후,
두꺼워진 햇볕이 골목 안까지
길게 들어왔다.
나뭇잎들의 푸름이
여름의 막바지를 향했다.
✦
냠냐미가 사료 그릇을
유심히 봤다.
‘흠.’
‘확실히 적어졌냐미.’
오득.
‘하지만...’
오득.
몇 입 먹자 사료 그릇은
금방 바닥이 보였다.
‘원이가 주는 맛이랑
똑같은데냐미...’
냠냐미는 남은 한 알을 먹지 않고
방석 쪽으로 몸을 돌렸다.
다 먹은 간식 껍데기가
눈에 들어왔다.
‘...!’
‘설마 간식 때문에
줄인 건가냐미?!’
냠냐미는 뒷발로 껍데기를
집 밖으로 밀었다.
슥~
슥~
‘후후. 완벽하게
처리 완료냐미.’
✦
냠냐미는 얌얌이집 앞에
햇볕을 피해 앉았다.
(냐 냐냐 냐냐— 냐냐—)
(냐냐냐냐 냐...)
어딘가 아쉽냐미.
(냐 냐냐 냐냐— 냐냐—)
(냐냐냐냐 냐냐...)
호오?
펠다들이 매일 오고 가는 사이
노래도 조금씩 모양을 갖춰갔다.
하늘빛 꼬리가
살랑거렸다.
네 발끝에도
같은 빛깔 물이 들기 시작했다.
흥얼거릴 때마다
그 빛은 천천히 번졌다가,
멈추면 잦아들었다.
✦ ✦ ✦
골목 입구에서
발소리가 났다.
원이냐미~!
(냐아~!)
“구미묘~!”
냠냐미가 원이를 마중 나왔다.
원이가 사료 그릇을 살피다, 멈칫했다.
‘혼자서 벌써
이걸 다 먹었어...?’
그릇엔 사료 한 알이
덩그러니 남아있었다.
원이가 고개를 갸웃하며
냠냐미를 봤다.
냠냐미가 앞발을 핥다가
원이와 눈이 마주쳤다.
냠냐미가 앞발로
큰 동그라미를 그렸다.
가~득 채워달라냐미~
(냐아~앙야옹야옹~)
그리고 원이랑
똑같은 방향으로
고개를 기울였다.
원이가 미소를 지으며,
사료를 채웠다.
‘입맛에 아주 잘 맞나 보네.
그때 프리미엄 사길 잘했다.’
“사료가 확실히 맛있지~~?”
(냐~~)
냠냐미가 기분 좋은 소리를 냈다.
‘오늘은 껍데기도
마중 나와있네.’
원이는 간식 껍데기를
손목에 건 비닐에 담았다.
비닐 소리가 나자
냠냐미가 얼른 가까이 왔다.
“응? 왜~?”
냠냐미가 비닐을 가리키며
기다란 김밥 흉내를 내고
냠냠 먹는 시늉을 했다.
“안 돼요~ 매일 간식까지 먹고 있잖아~
과식하면 아파요.”
원이가 손으로
큰 동그라미를 그렸다.
“지금 구미묘 배가
아주 동~그란 달덩이에요~”
냠냐미가 얼른
배를 집어넣었다.
원이가 냠냐미를
보고 웃었다.
“이 사료 다 먹으면,
특식으로 김밥 한 번 사 올게.”
“이거 고양이한테 엄청 좋대.
프리...”
방금까지 옆에 있던
냠냐미가 보이지 않았다.
냠냐미가 방석 위에 누워
짧은 다리를 들었다 내렸다 하고 있었다.
풉.
원이는 마저 주변 쓰레기를
비닐에 담기 시작했다.
냠냐미의 다리는
더 올라오지 않았다.
✦ ✦ ✦
조금 뒤,
연이가 들어왔다.
“냠냐미~ 나 왔어~”
연이냐미~!
(냐아~!)
옆으로 누워있던
냠냐미가 쪼르르 나왔다.
“어! 안녕하세요~!
원이 씨도 계셨네요.”
“안녕하세요. 연이 씨.”
연이가 손에 걸린 봉지를
흔들어 보였다.
“짜잔! 신상 닭가슴살~~!
저번에 이거 맛있었다고 했지?
새로운 맛 있길래 바로 데려왔지~”
맞냐미 맞냐미~~!
냠냐미가 연이 주위를
폴짝폴짝 돌았다.
연이가 닭가슴살을
먹기 좋게 까서
냠냐미에게 건넸다.
냠냠.
냠냠.
냠냐미가 정신없이 먹었다.
냠냠.
냠냠.
냠냐미의 배가 뽈록하게 나왔다.
‘이제야 배가 부르냐미~ 히히.’
냠냐미가 배를 앞으로 더 내밀고
옆구리를 두드렸다.
통통배 통통~냐미~~
(냐앙냥앙냥~)
원이가 냠냐미를 보고
놀란 표정을 지었다.
‘사료를 먹고 나서...
간식을 매일 이렇게 먹는구나.’
냠냐미가 원이의 표정을 보더니,
배를 얼른 쏙 집어넣었다.
아니냐미! 방금 진짜 배 아니었냐미!
(뇨뇨! 냐옹냐옹야야옹!)
원이가 중얼거렸다.
“부럽다. 고양이는 살쪄도 귀여워...”
‘살이... 찌긴 했지만...!
방금은 진짜로 더 내민 거였냐미...’
냠냐미 주둥이가
앞으로 삐죽 나왔다.
✦
원이와 연이가
자리를 잡고 앉았다.
어느새 익숙해진 골목이었다.
연이가 말했다.
“정이 씨는 정말 매일 뛰시더라고요.
오는 길에 몇 번이나 만나서 인사했어요.”
원이가 고개를 끄덕였다.
“저도 그렇게 몇 번 인사했어요.
여기서처럼 대화는 못 하고, 눈인사만요.
정말 부지런하시더라고요.”
✦ ✦ ✦
일정한 발소리가 들렸다.
골목 안으로
정이가 들어왔다.
평소처럼 운동복 차림이었다.
그런데 어딘가
평소와 달랐다.
무뚝뚝한 표정이
오늘따라 어두워 보였다.
✦
“정이 씨!”
연이가 반갑게 흔들던 손을 멈췄다.
“...무슨 일 있어요?
표정이 안 좋아 보이는데.”
정이가 떨어져 앉아, 고개를 숙였다.
“...아무것도 아니에요.”
연이가 정이 옆에 앉았다.
“에이. 아무것도 아닌 게
아닌 것 같은데요.”
연이가 시선을 앞에 두고 말했다.
“저도 그렇게 말할 때가
있어서 알아요.”
정이가 연이를 쳐다봤다.
“천천히 생각해보시다가~
뭐든 이야기하고 가요.”
“여기서 떠들고 나면
꽤 후련해지거든요. 크크.”
냠냐미가 정이 쪽을 가만히 봤다.
인간바위가 오늘
유난히 무거워 보이냐미.
✦
지이잉.
원이가 정이를 봤다.
정이는 워치를 흘긋 보고,
모자를 눌러썼다.
✦
정이는 한참 말이 없었다.
모두가 정이를 기다려주었다.
✦ ✦ ✦
정이가 입을 열었다.
“사실...”
“요즘 전만큼
폼이 안 올라와요.”
연이와 원이의 몸이
정이를 향했다.
“...훈련량을
더 늘렸는데도요.”
정이가 신발 끈을 고쳐 맸다.
“재활은 끝났는데...
몸이 예전 같지가 않으니까...”
정이가 소리 나지 않는
한숨을 내쉬었다.
“가족들은 나이가 있으니,
지금이라도 얼른 안정적인 일을
찾아야 하지 않겠냐고 하시는데.”
정이의 시선은
땅을 벗어나지 못했다.
...
“어렸을 때부터 이 길만 걸어서
다른 선택지를 생각해 본 적이 없거든요.”
셋 사이로 해가 뉘엿뉘엿 지고 있었다.
“...열심히 하는데 제자리인 느낌.
그게 제일 답답하네요.”
정이가 작게 웃었다.
웃는데 눈은 웃지 않았다.
✦
원이는 그 표정을 알 것 같았다.
‘여기는 학교가 아닙니다.’라는
말을 들었던 날.
‘나도 저런 얼굴이었겠지.’
뭐라 말해주고 싶었지만,
섣불리 문장을 고르지 못했다.
원이는 그때처럼
아무 말도 못 하고, 그냥 있었다.
✦ ✦ ✦
냠냐미는 정이를 보며
방울을 만지작거렸다.
‘비상용에...
아직 못 옮겼는데냐미...’
냠냐미는 앞발로
방울을 쥐었다가 놓았다가 했다.
‘마지막...인데냐미...!’
......
냠냐미의 머릿속에서
두 목소리가 들렸다.
누구의 마음에나 살고 있는,
말리는 소리와
떠미는 소리였다.
✦
‘하나는 비상용으로 옮겨야지!
그렇게 감정에 휘둘리면
굶어 죽는 거야.’
‘비상용으로 옮겨도,
그다음에 꺼낼 냠냠볼은 이거야.
정이의 얼굴을 봐.
줄 수 있을 때 주는 것도 감사한 거야.’
‘지금 네 냠냠볼도 넉넉하지 않잖아.
다들 바빠져서 오지 않으면?
진짜 집주인이라도 나타나서 쫓겨나면?
다시 배고픈 길고양이 신세 되는 거야.’
‘길 잃었을 때 기억 안 나?
그때 정이 아니었으면 넌 이미 길고양이였어.’
‘비상용 방울은 없다고 생각하기로 했잖아.
아껴 먹어도 이틀 겨우 버틸 거야.’
✦
‘아악!! 알겠냐미 그만!’
냠냐미가 머리를 흔들었다.
...
‘결정했냐미.’
‘이 몸은
은혜를 아는 고양이냐미.’
‘지금 이게 필요한 건
정이냐미.’
냠냐미는 머릿속으로
비상용 방울 속 냠냠볼을 세었다.
‘진짜 진짜 마지막 두 개가 남아있냐미.’
냠냐미가 허리춤에 앞발을 얹었다.
‘우울한 기분을
이 몸이 날려주겠냐미.’
냠냐미가 셋의 앞으로
앞발을 크게 휘저었다.
여길 보라냐미!
멋진 걸 보여주겠냐미~~
(냐아양! 냐나양아야옹앙~~)
✦
냠냐미가 목의 방울을
앞발로 건드렸다.
톡.
방울이 열렸다.
냠냐미는 열린 방울에서
하나 남은 냠냠볼을 꺼냈다.
텅 빈 방울은,
희미한 푸른빛을 내더니
소리 없이 사라졌다.
✦
“어??”
연이가 눈을 깜빡였다.
“방금 방울,
없어지지 않았어요?”
원이도 봤다.
‘저 안이 비면,
방울은 사라지는구나.’
✦
냠냐미는 왼 앞발바닥 위의
냠냠볼을 진지하게 보고 있었다.
냠냐미가 오른 앞발을 높이 들었다.
원이와 연이의
눈이 마주쳤다.
“어, 저거.”
“반가르기 나온다.”
✦
정이만 영문을 몰랐다.
“뭐 하는 거예요?”
✦
냠냐미가 정이를 흘긋 봤다.
잘 보라냐미~!
(냐앙)
탕-
냠냠볼이 정확히 반으로 갈라졌다.
“...!”
정이의 눈이 커졌다.
연이가 손뼉을 쳤다.
“꺄~~! 우리 냠냐미~~
이거 진짜 잘하죠!”
정이의 굳어 있던 얼굴이,
자신도 모르게 풀렸다.
냠냐미가 정이를 보았다.
‘히힛. 다시 적당히 무거운
바위얼굴로 돌아왔냐미.’
원이가 웃으며 말했다.
“두 번 봐도 놀랍네요.
아 맞다 박수.”
(짝짝짝~)
연이의 손뼉에
원이의 박수가 더해졌다.
냠냐미가 눈을 감은 채
어깨를 으쓱했다.
연이가 정이에게 소곤댔다.
“박수 쳐줘야 눈 떠요. 크크.”
하늘로 치켜든
냠냐미의 콧구멍이 벌름거렸다.
정이가 박수를 따라 쳤다.
무거웠던 공기가
한결 가벼워졌다.
정이는 웃고 있었다.
방금 전까지
가슴을 누르던 것들이,
하나도 생각나지 않았다.
‘희한하네.’
‘...이 작은 고양이는
마법을 부리는 걸까.’
✦
냠냐미가 반쪽을 입에 넣고,
반쪽을 정이에게 내밀었다.
먹어보라냐미.
힘이 날 거냐미. 히히.
(냐옹)
정이가 물었다.
“근데... 고양이는
초콜릿 먹으면 안 되지 않아요?”
원이가 말했다.
“김밥도 먹어요...”
연이도 덧붙였다.
“맨날 달고 다니는
저 비상식량이 초콜릿맛이에요.”
정이가 고개를 끄덕였다.
“아하. 그렇군요.”
✦
냠냐미가 정이 쪽으로
앞발을 더 내밀었다.
정이가 반으로
쪼개진 냠냠볼을 보고,
연이와 원이를 쳐다봤다.
연이가 손바닥을 보이며 웃었다.
“저는 먹어봤으니 패스~”
원이도 웃었다.
“드셔보세요. 맛있어요.”
정이가 조심스럽게 받아
입에 넣었다.
겉의 화이트 초콜릿이 사르르 녹았다.
살짝 씁쓸한 파란 가루.
다크 초콜릿. 캐러멜. 마지막에 너트까지.
따뜻한 것이 목을 타고 발끝까지 내려갔다.
정이 주변에
푸른 기운이 일렁였다.
정이의 귀가 먹먹해졌다가 풀렸다.
✦
그 순간이었다.
정이의 모습 위로,
하늘색 세잎클로버 잔상이 비쳤다가 사라졌다.
✦
냠냐미가 말했다.
“기분이 좋아졌냐미?”
(냐아옹?)
정이가 놀라서 멈칫했다.
“응??”
“...방금.”
손가락으로 본인을 가리켰다.
“...나한테 말을..?”
✦
원이와 연이가
마주 봤다.
둘 다 알 것 같다는 얼굴이었다.
연이가 웃었다.
“저도 처음에 그랬어요.”
원이가 말했다.
“카페인처럼 묘하게 힘이 돌고.
그러다 얘 말이 들리는 것처럼 느껴져요.”
정이가 둘을 번갈아 봤다.
‘아, 고양이의 이름도,
구미묘라는 주장도
이런 식으로 들었던 거구나.’
✦
정이가 냠냐미를 봤다.
냠냐미가 정이를 빤히 봤다.
“정이도 들리냐미!”
(냐야옹야옹!)
✦
정이가 자신의 두 손바닥을 내려다봤다.
‘저번에도 기분 탓이 아니었구나.’
연이가 정이를 보며 말했다.
“아쉽게도 매번은 안 들려요.
잠깐이지만, 신기하죠?”
원이가 덧붙였다.
“가끔 길~게 울 때도 그래요.”
연이가 끼어들었다.
“아! 그때!
우리 다 같이 있었을 때 맞죠?”
“펠다냐미~~~ 한 날. 크크.”
“맞아요. 진짜 하고 싶은 말이 있을 때
그렇게 우나 봐요.”
“계속 알아듣고 싶은데 너무 아쉬워요.”
연이가 익살스럽게
우는 표정을 지었다.
정이가 작게 웃었다.
이번엔 눈도 같이 웃었다.
“여기, 진짜 희한한 데네요.”
정이는 자신의 양 주먹을
여러 번 쥐었다 폈다 했다.
✦ ✦ ✦
냠냐미가 오물거리며 말했다.
“캬~ 에너지가
도르르르 도는 거냐미.”
(냐~ 냐아야옹야옹냐옹.)
✦
정이가 냠냐미의 목을 봤다.
“근데... 아까 그 방울 사라졌던데,
냠냐미는 괜찮은 건가요?”
연이가 혼자 감동받은 얼굴로 말했다.
“힘내라고 나눠 주고 싶었나 봐요.”
“괜찮냐미!”
(냐냐아옹!)
냠냐미가 앞발로 따봉을 만들었다.
그걸 보고
연이가, 원이가, 그리고
정이가 엄지를 올리며 웃었다.
✦
원이는 냠냐미 털 깊숙이
소중하게 숨겨둔
마지막 방울이 있다는 것을
눈치채고 있었지만,
굳이 입 밖에 내지 않았다.
✦ ✦ ✦
셋은 자연스럽게
이야기를 나누었다.
연이가 밝게 말했다.
“여기 오면 행복이 뭐
별거 있나 싶다니까요~”
냠냐미가 기분 좋은 울음소리로
맞장구쳤다.
연이가 냠냐미를 보며 물었다.
“냠냐미도 지금
행복하다고 하는 거지?”
(냐~)
“냠냐미는 언제 제일 행복해?”
냠냐미가 잠깐 생각했다.
야옹 소리가 이어졌다.
...보면 기분 좋아지는 것들을 볼 때,
누워서 잘 곳이 있을 때,
먹을 걱정 없을 때,
하고 싶은 말을 담아 노래할 때,
...누군가 좋아서 곁에 있어줄 때,
그 사람들이 행복할 때,
아, 그리고!
냠냐미가 셋을 한 번 둘러봤다.
...
이 몸이 예쁠 때냐미~
일렁이던 푸른 기운은 거의 사라졌다.
다들 냠냐미의 말을 알아듣지 못했지만,
기분 좋게 웃었다.
“귀여워~~!”
✦ ✦ ✦
냠냐미가 셋을 빤히 보며 물었다.
펠다들은 언제 행복하냐미?
(냐아냐야옹냐앙냐앙야옹~~?)
냠냐미는 고개를 갸웃하며
펠다들을 한 명씩 봤다.
정이는 이 상황이
머리로는 받아들여지지 않았지만,
집중하고 싶었다.
정이가 더듬더듬 말했다.
“냠냐미가... 우리한테도
뭘 묻는 거 같은데요?”
연이가 냠냐미를 보고 말했다.
“너도 대답을 해봐라!
이렇게 말하는 거 같은데
맞나요? 냠냐미 씨 크크.”
냠냐미가 연이를 보며
눈을 느리게 깜빡였다.
‘오~~ 잘 알아듣냐미~’
꼬리가 기분 좋게 흔들렸다.
✦
“자~ 그럼 정이 씨부터~!”
연이가 정이를 보고 물었다.
“정이 씨는 언제 행복하시나요?
달릴 때?”
연이가 마이크를 잡고 넘기는 시늉을 했다.
...
“행복이요?
흠. 행복이라...”
......
정이는 얼른 대답을
해줘야 할 것 같은 기분이 들었지만,
답을 찾지 못했다.
“...사실 생각을 잘 안 해보고
사는 것 같기도 하네요.
갑자기 생각하려니.”
“연이 씨는...!
언제 행복하다 느끼세요?”
연이가 눈을 위로 굴렸다.
“행복이라.”
“음!”
연이의 눈이 빛났다.
“저는!
사람들이 안목이
뛰어나다고 댓글 달아줄 때요!”
...
“그리고... 일 다 끝내고,
주말에 콘서트 갈 때~!
캬~ 행복합니다~!”
연이가 원이를 보며
마이크를 넘기는 시늉을 했다.
“원이 씨는 언제 행복하세요?”
원이가 뜸을 들이며 말했다.
“저는 음...”
...
“누가 절 필요로 하거나...
제가 누군가를 도와줄 수 있을 때.”
“챙겨주면서 오히려
제가 힘을 얻는 것 같아요.”
원이의 눈에 작은 빛이 들었다.
......
“그냥 마음 편하게
웃고 떠들 수 있는 순간이 행복해요.”
원이가 얌얌이집과 냠냐미,
그리고 셋이 모인 골목을 보며 말했다.
“요즘은 여기,
이 시간이 그래요.”
원이가 소탈하게 웃었다.
연이가 맞장구를 쳤다.
“저도 동감이요! 크크.”
“정이 씨도 그렇죠?”
연이가 정이를 쳐다보며
마이크를 넘기는 척을 했다.
정이가 무겁게 입을 뗐다.
“꿈을 향해
땀 흘리는 시간이
행복하다고 생각했어요.”
“근데.”
모두가 정이의 말에 집중했다.
......
“모르겠어요.
뭐가 행복인지.”
흔들리던 냠냐미의 꼬리가 멈췄다.
“분명 꿈을 꾸는 과정이
행복하다고 생각했는데...”
“결국 보이는 결과가
행복이었던 걸까요.”
정이가 힘 빠진 숨을 쉬었다.
✦
냠냐미가 셋을 번갈아 쳐다봤다.
‘좋아하는 걸 말할 때
눈에 빛이 도냐미.’
✦ ✦ ✦
셋은 도란도란 이야기를 이어갔다.
별것 아닌
사는 이야기였다.
냠냐미는 어슬렁어슬렁
주변을 걸었다.
연이가 호들갑을 떨며 말했다.
“그거 들었어요?
이 공원에 엄청 큰 나무 하나가 들어왔대요.
수호수, 수호수.”
원이가 말했다.
“아 그 하얗게 뭐 공사하는 거
같은 게 그거였구나.”
연이가 가지를 꺾는 시늉을 하며 말을 이었다.
“그 나무의 가지를 꺾어서,
떠나는 사람에게 주면
곁에 머무른다는 소문이 나면서...”
연이가 뜸을 들이다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나뭇가지가 아주 남아나질 않았대요...”
어휴 하는 탄식이 양쪽에서 터졌다.
정이가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결국 나무가 떠났네요.”
“결국 우리에게 온 거죠. 크크.”
그때,
냠냐미 머리 위로 파란 것이
하나 날아들었다.
나비였다.
‘파란 나비냐미!’
냠냐미는 나비를 따라갔다.
멀어지는 냠냐미에게
원이가 말했다.
“냠냐미! 멀리 가면 안 돼!”
어느새 한결 편해진 표정의
정이가 말했다.
“또 데리고 오죠 뭐.
편하게 놀고 와~”
나비가 풀밭 한쪽으로
팔랑팔랑 내려앉았다.
냠냐미가 그 뒤를 따랐다.
폴짝.
폴짝.
연이가 소리쳤다.
“냠냐미~~ 거기까지 오케이~~
더 멀리는 안 돼~”
그리 멀지 않은,
풀밭의 냠냐미를 확인하고
셋은 대화를 이어갔다.
✦
클로버가 잔뜩 돋은 풀밭이었다.
여자아이 하나가 쪼그려 앉아
무언가를 찾고 있었다.
우는 애를 업은 엄마가
여자아이를 재촉했다.
“이제 그만 가자.
저녁 먹어야지.”
“행운의 네잎클로버...
오늘도 못 찾았는데...”
“저번에는 돌 찾지 않았니?”
“행운의 네잎클로버가
더 좋을 것 같아서요.”
“내일 또 올 거잖니.
오늘은 이만 가자.”
여자아이는 아쉬운 얼굴을 하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네.”
그리고 수풀을 지나
엄마에게 달려갔다.
수풀이 한 번,
소리 없이 흔들렸다.
✦
‘사람들은
행복을 잔뜩 두고
행운을 찾냐미.’
냠냐미가 풀밭에
슬그머니 앉았다.
세잎클로버 하나가
냠냐미 눈에 들어왔다.
어? 원이 닮았냐미?
냠냐미가 좋은 생각이 난 듯
엉덩이를 씰룩거렸다.
호오~ 그럼
연이도 있으려나냐미.
냠냐미가 코를 박고
풀밭을 뒤졌다.
오오!! 완전 연이! 찾았냐미!
냠냐미의 씰룩대는 엉덩이 뒤로
퐁실한 꼬리가 사락사락 풀잎을 스쳤다.
히히. 정이는 어디 있냐미~
잎 하나가 봉긋하게 솟은 클로버가
여럿 모여있었다.
호호 정이가 많냐미!
냠냐미는 그중
가장 큰 클로버를 골랐다.
흐흐흐. 숨은 펠다 찾기 성공이냐미.
냠냐미는 클로버 세 개를
입에 살살 물었다.
파란 나비는
어느새
보이지 않았다.
✦
연이가 냠냐미를 보고 물었다.
“어, 냠냐미 뭐 물고 왔어?”
‘비밀이냐미. 히히.’
냠냐미는 물고 온 클로버를
얼른 방석 밑에 소중히 밀어 넣었다.
정이가 웃으며 말했다.
“풀 뜯으면서
잘 놀다 온 거 같은데요.”
✦ ✦ ✦
해가 거의 넘어가고 있었다.
연이가 손뼉을 쳤다.
“맞다! 여러분 빅뉴스~!
다음 달 마지막 주말에 블루문이 뜬대요.”
냠냐미의 귀가 쫑긋했다.
“블루문이요?”
“저, 저번에 이야기하고 나서
좋은 날이 있나~
달력 계속 봤거든요~”
“극히 드물게 뜨는 달이라는데
이거 너무 좋은 타이밍 같지 않아요? 크크.”
“무슨 문, 무슨 문...
뉴스에서 들어봤는데 운동하느라
실제로는 한 번도 못 봤네요.”
“이름처럼 파랗지는 않대요.
한 달에 보름달이 두 번 뜰 때,
두 번째 보름달이라고 알고는 있는데.
저도 제대로 본 적은 없는 것 같아요.”
정이와 원이의 말을 듣고
신이 난 연이가 목소리를 높였다.
“우리 그럼,
이번에 진짜 소풍 가요!
저번에 말만 했잖아요~”
둘이 동시에 연이를 쳐다봤다.
“소풍 하면 봄 소풍,
가을 소풍 아니겠어요?
봄에는 우리가 몰랐으니까
가을에 딱! 날씨도 요즘 딱~!”
연이가 눈썹을 올리며, 둘을 봤다.
“냠냐미 덕분에 알게 된 인연인데,
펠다 동지들?”
정이를 보며 연이가 물었다.
“냠냐미와 펠다의 가을 소풍!
정이 씨 어때요? 흐흐.”
들뜬 분위기에 정이가 얼떨결에 말했다.
“훈...련을 미리미리 하고...
한번 맞춰 볼게요...!”
원이도 고개를 끄덕였다.
“저도 주말은 괜찮아요.”
“자자 이럴 때 이거 누가 앞장서야 놀러 가지~
안 그러면 못 모이고 가을 끝나요.
말 나온 김에 다음 달 마지막 주 토요일!
블루문 보러! 다들 어때요?”
누군가 진행을 해야 놀러 갈 수 있다는 말에
다들 잠시 생각하다가 머리를 끄덕였다.
연이가 양팔을 위로 들며
커다란 프로젝트를 하나 따낸 듯
기분 좋게 외쳤다.
“냠냐미와 펠다의 가을 소풍
진행 확정~~! 땅땅땅!”
“제가 차로 모실게요. 크크.”
연이를 올려다보는 둘의 얼굴도 환했다.
✦
냠냐미가 셋을 번갈아 봤다.
냠냐미와 펠다들???
꺄~ 너무 재미있겠냐미~~ 히히히.
꼬리가 바닥을 탁탁 쳤다.
✦
언젠가, 하고
말로만 흩어지던 약속이,
또렷해졌다.
✦ ✦ ✦
다들 돌아가고
혼자 남은 냠냐미는
방석 위에 올라가 웅크렸다.
방금까지 복작복작했던 공간이
무서울 만큼 고요했다.
...
냠냐미의 시선이 돌 뒤에 닿았다.
‘흠. 이건 심심한 건 아니냐미.’
냠냐미의 시선이 스케치북에 닿았다.
‘호~ 오랜만에 그림이나 그려볼까냐미~’
‘마침 오늘 예쁜 걸 봤냐미.’
클로버가 구겨지지 않도록
냠냐미는 방석에서 내려와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파란 크레파스를 잡은 냠냐미의 앞발이
스케치북 위를 왔다 갔다 했다.
‘클로버가 잘 눌리면 나중에
스케치북으로 옮겨야겠냐미. 히히.’
✦
냠냐미는 정이의 말이
자꾸 마음에 걸렸다.
‘모르겠어요.
뭐가 행복인지.’
냠냐미는 생각했다.
행복은 빗방울 같은 거 아니냐미?
작고, 많고, 어디에나 있는...
찾는 만큼 다 내 행복이냐미.
✦
냠냐미의 눈이 빛났다.
행복이 뭔지, 노래로
들려주면 되는 거냐미!
펠다들의 행복을 노래로 만들어서
불러주는 거냐미~~
신이 난 냠냐미가
허공에 발길질을 했다.
깜~짝 선물에 딱이냐미~~ 히히.
✦
냠냐미는 흥얼대기 시작했다.
(냐 냐냐 냐냐— 냐냐—)
(냐냐냐냐 냐냐...)
꼬리에, 네 발에 하늘빛이 돌았다.
흥얼대는 사이로,
지나간 말들이 하나씩 얹혔다.
네가 나로 인해 행복해질 때...
나는 그게 좋냐미.
(냐 냐냐 냐냐— 냐냐—)
여기서
같이 웃고 떠드는 게
행복이 된다면.
언제라도
이리로 오라냐미.
내가 그 행복이 되어주겠냐미.
너희는 정말,
멋진 사람들이냐미.
✦
막히는 곳은 건너뛰고
되는 곳부터 뜨문뜨문 만들다 보니
아까보다 또렷한 가락이 잡혀갔다.
마지막 부분에서 고민이 많아졌다.
(냐 냐 냐 냐 냐—냐 ...... 냐냐냐...)
흠. 자꾸 막히냐미.
✦
냠냐미가 흥얼대다 말고,
펠다들이 사라진 골목 쪽을 봤다.
막힌 자리에,
하고 싶은 말이 하나 걸려 있었다.
차마 노래에 넣지 못한 말이었다.
...
‘오늘이 지나도
내 곁에,
있어주면 좋겠냐미.’
냠냐미는 그 말을
가슴 안쪽에 담아두었다.
✦
수풀 사이로
회색 고양이 꼬리가 나왔다가 사라졌다.
✦
달이 거의 둥글어져 있었다.
✦
카드 위의 푸른 잎이
끝부터 바래기 시작했다.
스케치북에 그려진
파란 나비 하나가
두꺼운 달빛에 앉았다.
✦ ✦ ✦
8장 「알려줘 너의 행복한 순간」 여름 끝 · 9장 가을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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