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장 블루문 아래서

가장자리만 노랗던 나뭇잎들이
어느새 속까지 물들어 있었다.

해가 기울기 시작할 때면
일정하게 가까워지던 발소리 없이,
한 달이 지났다.

✦

약속한 주말 아침이 밝았다.

새파란 도화지 같은 하늘은
구름 한 점 없이 높고 맑았다.

가을바람이
선선하게 불었다.

소풍 가기 딱 좋은 날이었다.

✦

골목 입구에 큰 차 한 대가 섰다.

연이가 운전석에서 내렸다.

“짜자잔~!
차 빌려왔지요~!”

원이가 놀라며 말했다.

“우와. 진짜 차 가져오셨네요.”

원이의 손에 도시락 가방이 들려 있었다.

“당연하죠~ 냠냐미와 펠다들 첫 소풍인데요~~!”

✦

냠냐미가 얌얌이집에서 폴짝폴짝 나왔다.

소풍 가는 날이냐미~~~
(냐아야옹야옹냐옹~~~)

번쩍 선 꼬리 끝이 휘었다.

✦

연이가 두리번거렸다.

“정이 씨는 아직 안 오신 거죠?”

원이도 주변을 둘러봤다.

“네. 아직이요.”

“소풍 약속한 날 이후로
한 번도 못 봤는데...
그래도 오늘은 오시겠죠?”
“그러게요. 맞춰 보신다고 했는데.”

연이가 트렁크를 열었다.

“빠진 거 없나 체크하면서
좀 더 기다려볼까요?”

원이가 얌얌이집 주변을 치우며 말했다.

“네. 여기 정리도 하고요.”

✦

해가 머리 위로
올라오기 시작했다.

연이가 골목 쪽을 봤다.

“아무래도...
훈련을 못 빼셨나 봐요.”

✦

냠냐미가 골목 입구를 봤다.

...

그날,
정이가 한 미안하단 말을 떠올렸다.

꼬리 끝이 저도 모르게 처졌다.

✦

연이가 분위기를 바꾸려는 듯 말했다.

“일단! 화장실 미리 다녀오죠.
나중에라도 오시면 이야기해주시겠죠!”

“네. 좋아요!”

원이도 일부러 밝게 대답했다.

✦

화장실을 다녀오고도
정이는 오지 않았다.

✦

연이가 핸드폰 시계를 봤다.

“더 늦으면 차가 막힐 것 같아서
일단 우리끼리라도 출발해야겠네요.”

연이가 운전석에 올랐다.

“네... 구미묘~ 가자.”

원이도 골목을 한 번 쳐다보고,
뒷자리에 앉았다.

즐거운 소풍이냐미~~!!
(냐야옹야옹냐~!)

...

냠냐미가 가볍게 차에 올랐다.

따라오는 꼬리가 무거워 보였다.

시동이 걸리고,
내비게이션이 켜졌다.

띠리링

[경로 안내를 시작합니다]

삐-삐- 삐-삐-

트렁크 경고음이었다.

“아, 아까 트렁크를
안 닫았나 봐요.”

연이가 운전석에서 내려와
트렁크 쪽으로 갔다.

✦

그때,

모자를 눌러쓴 사람이
서둘러, 이쪽으로 오고 있었다.

✦

연이의 눈이 커졌다.

“정이 씨~~!”

연이가 손을 크게 흔들었다.

반가운 외침에 차 안에서
원이와 냠냐미가 밖을 보았다.

정이가 숨을 고르며 다가왔다.

구레나룻을 타고 땀이 흘러내렸다.

...

“죄송해요. 많이 늦었죠.”

연이가 넉살 좋게 말했다.

“어유~ 아니에요. 딱 잘 왔어요!”

원이도 차에서 내렸다.

✦ ✦ ✦

냠냐미가 차에서 폴짝 뛰어내려
정이 발치로 갔다.

작별 같은 건
처음부터 없었다는 듯,
환하게 반겼다.

정이 왔냐미!
(냐아~~)

✦

정이가 모자 챙을 만지작거렸다.
“저... 사실, 안 오려고 했어요.”

둘이 놀라 정이를 쳐다봤다.

“에에?”

✦

정이가 냠냐미를 슬쩍 쳐다봤다.

“...못 올 거라고. 말까지 해놓고선.”

그 말은 냠냐미만 들릴 만큼 아주 작았다.

✦

정이가 멋쩍게 웃었다.

“자꾸 생각나더라고요.
떠나려고 하니까. 오히려 더.”

...

연이가 잠깐 멈칫했다가
환하게 웃으며 말했다.

“자자~ 우리 넘어가서 자세한 이야기를
나누어 볼까요? 크크.”

“일단 타요. 정이 씨.”

원이가 싸 온 도시락을 들어 보이며 웃었다.

정이가 원이를 향해 가벼운 목례를 하고,
냠냐미 앞에 쪼그려 앉았다.

...

잘 왔냐미~~
(냐아앙~)

냠냐미가 정이의 정수리에
콩, 하고 앞발을 얹었다.

그날 머리에 닿았던
그 작은 무게가, 다시 닿았다.

정이와 냠냐미 사이에
푸른 기운이 일렁였다.

정이의 귀가 잠깐 먹먹해지다가 풀렸다.

“오고 싶어서 오는 게 좋냐미.”
(냐앙야옹냐앙.)

정이가 놀란 눈으로
냠냐미를 보았다.

...

“응. 오고 싶어서 다시 왔어.”

그리고 작게 웃었다.

✦

연이가 손뼉을 쳤다.

“자, 그럼 다 모였으니까!
출발합니다~!”

연이가 화로대를 확인하느라
열어둔 트렁크 문을 닫았다.

탁!

스슥.

‘어? 방금 장작 사이로
뭐가 움직인 거 같은데’

연이가 트렁크 앞에 우두커니 서 있자
정이가 연이에게 말했다.

“연이 씨 혹시 괜찮으시다면,
제가 운전해도 될까요?
준비해 오신 것도 많은데 앉아 가시죠.”

“아. 아니에요!”

연이가 얼른 운전석으로 걸어갔다.

“제가 안전하게 모시겠습니다~~”

넷은 다 같이 차에 올랐다.

✦

차가 부드럽게 움직였다.

창밖으로
골목이, 거리가
흘러갔다.

머리 위로 셋의 목소리가 들렸다.

웃음소리가
추임새처럼 오갔다.

‘다 같이 어딘가로 가는 건
처음이냐미. 히히.’

냠냐미는 그 소리들을
더 온전히 느끼고 싶어
눈을 감았다.

✦ ✦ ✦

소풍 자리는 강이 보이는
캠핑존이었다.

연이는 차에서 내리자마자
챙겨 온 장작과 화로대를
꺼내어 정리해 두었다.

“와~ 연이 씨
이거 다 준비해 오신 거예요?”

정이가 연이를 보며 말했다.

“하하하 그럼요~
블루문에~ 캠프파이어~! 해야지요~~”

다들 모여 돗자리를 펴고,
원이는 도시락을 풀었다.

김밥과 잘 손질된 과일이
예쁘게 층층이 담겨 있었다.

“이야~~ 원이 씨
요리 실력이 정말 대단하시네요.”

“다 사 온 거예요...”

원이가 손사래를 치며 웃었다.

냠냐미가 김밥 냄새에
앞발을 슬쩍 들이밀었다.

원이가 김밥을 멀리 치웠다.

“있는 사료 다 먹으면
사 올게요. 구미묘 씨~”

냠냐미가 멀리 치운 김밥을 보며
입맛을 다셨다.

쩝.

원이가 가방에서 무언가를 꺼내
등 뒤로 숨겼다.

“간식은 연이 씨가 매일 챙겨주지만,
소풍이니까 이거 준비했어.”

원이가 등 뒤에서 김밥 모양 고양이 과자를
냠냐미가 내민 앞발에 쥐여 주었다.

“어때?”

냠냐미의 표정이 바로 밝아졌다.

냐냐~~ 너무 좋냐미!
(냐냐~~~ 냐앙야옹!)

연이가 손뼉을 쳤다.

“와 어디서 구하셨어요!
너무 귀엽네요 크크.”

연이가 냠냐미를 돌아봤다.

“나는~~ 이거 사 왔지~”

연이가 캣닙을 꺼내서
냠냐미 옆에 놓아주었다.

냠냐미의 동공이 커졌다.

꺄아~~~ 너무 신나냐미!!!
(냐냐~~~냐오오오옹!!!)

햇볕은 따뜻하고,
바람은 부드러웠다.

햇볕보다 따뜻하고,
불어오는 바람보다
부드러운 사람들 사이에서
냠냐미는 방방 뛰어다녔다.

✦

냠냐미는 밤에
준비한 노래를 불러줄 생각에
흥분이 쉬이 가라앉지 않았다.

멜로디를 잊을세라
중얼거리며 가사를 외웠다.

‘다 모였냐미.
드디어 오늘이냐미.’

병아리떼가 쫑쫑 밟고 지나가는 것처럼
자꾸만 가슴팍이 간질거렸다.

✦ ✦ ✦

모여 앉은 셋 사이로
이런저런 이야기가 오갔다.

연이가 들떠서 말했다.

“저 자랑할 거 있어요~!
저번에 올린 옷, 완판됐어요!”

“와 축하해요!”

“사업을 할까 봐요~ 아까 연락 온 업체가 지방인데, 동생 사는 데랑
가까워서 생각해보려고요. 인정받는 이 짜릿함~~
저 성공하면 한턱 쏠게요~!”

“연이 씨 잘하실 것 같아요.”

“하하하. 감사합니다.
다들 자랑 하나씩 해주시죠~”

원이가 잠깐 생각하더니 말했다.

“음... 저 이번에 보너스 받았어요!”

“오, 진짜요?”

“제가 세심하게 신경 썼던 것들을 알아봐 주시더라고요.”

원이가 쑥스럽게 웃었다.

“...진짜 별거 아닌데. 그래도 기분이 좋았어요.”

“크~ 마음 알아줄 때 너무 좋죠~”

✦

연이가 정이를 보고 물었다.

“맞다. 정이 씨!
안 올 거라고 생각했다는 게
무슨 말이었어요!”

정이가 입을 열었다.

“...오늘까지도 참 생각이 많았어요.”

“저번에 그 고민 때문에요?”

정이가 고개를 떨구고 말했다.

“네. 집에 다녀왔거든요.
생각을 좀 정리하려고.”

정이가 손목의 워치를 만지작거렸다.

...

“다시는 못 볼 거라 다짐했는데.
그럴수록 마음이 불편해서...”

연이가 말했다.

“그래도 오셨잖아요~ 그럼 된 거죠.”

원이도 웃으며 말했다.

“맞아요. 오늘 블루문 보면
기분도 더 좋아지실 거예요.”

정이가 머뭇하며 말했다.

“여기에 있고 싶었나 봐요.
지금... 정말 좋네요.”

셋이 서로를 봤다. 그리고 웃었다.

그 뒤로도 이야기는 쉬지 않고 오갔다.

별거 아닌
이야기들이었다.

그 별거 아닌 것들이,
오늘따라 유난히 반짝였다.

✦

‘오늘 밤에
행복을 선물해 줄 거냐미~ 흐흐흐.’

냠냐미의 입꼬리가 씰룩거렸다.

✦ ✦ ✦

강가에 노을이 지기 시작했다.

주황빛으로 물든 바닥이
천천히 어두워졌다.

“냠냐미와 펠다들~~ 가을 소풍의 하이라이트!
블루문 캠프파이어 시작인가요~!”

정이가 화로대 설치를 도왔다.

연이가 장작으로 화로대에
작은 모닥불을 피웠다.

탁, 탁.

불씨가 튀었다.

넷의 얼굴이 모닥불에 붉게 일렁였다.

✦

냠냐미가 장작 더미 옆에서
잔가지를 여러 번 물어 왔다.

쌓인 나뭇가지를 옆에 두고
냠냐미는 펠다들의 얼굴을
찬찬히 바라봤다.

불 앞에서 멍때리는
펠다의 얼굴들을 보니,
미소 뒤에 가려진 저마다의
어떤 무게감이 느껴졌다.

냠냐미가 심호흡을 하더니
자리에서 아주 길게 울었다.

그 붉음 속에서
푸른 기운이 넷을 감쌌다.

셋의 귀가 동시에
먹먹해지다가 풀렸다.

모두가 반사적으로
냠냐미를 바라보며
귀를 기울였다.

흠흠.

냠냐미가 앞발을 들었다.

그리고 펠다들에게
물어 온 나뭇가지를 두 개씩 나누어 주었다.

펠다들은 영문을 모른 채
나뭇가지를 받았다.

“자~ 다들 이 중에 하나를 들고,
고민 하나씩 말해보라냐미.”
(냐앙 야옹야옹 냐아야옹.)

“...고민?”

“그리고 휙.
저 불 속에 던지는 거냐미.”
(냐아옹 야옹야옹 냐야옹냐.)

“오, 뭔가 의식 같은 거네?
그럼 나머지 하나는?”

연이가 재밌어했다.

“그건 이따가
신나는 만큼 흔들면 되냐미.”
(냐야 아옹야옹)

“지금도 신나는데. 크크.”

연이가 하나를 흔들다 내려놓고
다른 하나를 집었다.

원이도 나뭇가지를
한두 번 흔들어 보고는 미소를 지었다.

정이도 나뭇가지를
만지작대며 하나를 집었다.

✦

냠냐미가 연이를 빤히 바라봤다.

“오... 나부터인가.”

연이가 나뭇가지 하나를
불 앞에서 빙글빙글 돌렸다.

“음. 저는 인정받고 싶어서
자꾸 무리하는 거.
안 그래도 되는데.”

그리고 불에 던졌다.

휙.

타닥.

냠냐미가 만족하는 얼굴로
원이를 바라봤다.

원이가 나뭇가지 하나를 두 손으로 꾹 쥐고 말했다.

“저...는 제가 별거 아닌 사람일까 봐.
착하지도 않으면서, 착한 사람인 척하는 걸까 봐.
늘 그게 무서워요.”

휙.

타닥.

냠냐미가 정이를 바라봤다.

정이가 손에 든 나뭇가지를 지그시 보며 말했다.

“여태까지 걸어온 길이
내 길이 아니면 어쩌나.

그게 제일 불안해요.
계속 노력하는 이 시간이... 무의미해질까 봐.”

“...근데.
오늘은 그런 걱정, 내려놔야죠.”

“이렇게.”

휙.

타닥.

세 개의 가지가 불 속에서 타올랐다.

불꽃이 한 번 크게 일렁였다.

다들 잠깐 말없이 그 불을 봤다.

“자 다들 잘했냐미~~
걱정들이 아주 잘~~ 타고 있냐미~~~”
(냐냐~ 냐아옹냐야옹야옹야옹~~~)

“냠냐미도 던져야지~!”

연이가 말했다.

냠냐미가 나뭇가지를 물고 불 앞으로 갔다.

“냠냐미는..!”
(냐아냐...!)

모두가 냠냐미의 말에 집중했다.

...

“귀여움이 생존 필살기인데...
매일 덜 귀여워지면 어쩌나...
그게 걱정이냐미~~”
(냐아옹... 냐앙냐옹... 냐옹야옹~~)

휙.

타다탁.

냠냐미의 걱정을 듣고 다 같이 웃음이 터졌다.

(하하하)

모여 앉은 모두의 마음 한구석이,
아까보다 가벼워진 것 같았다.

푸른 기운이 셋 사이를 계속 일렁였다.

✦ ✦ ✦

냠냐미가 자리에서 일어나
헛기침을 했다.

흠흠.

모닥불 앞으로,
한 발 나섰다.

“이 몸이...! 할 말이 있냐미!”

모두가 다시 냠냐미에게 집중했다.

‘하악 떨리냐미. 안 되겠냐미.
못 하겠냐미. 못 하겠냐미.’

냠냐미의 행동이 부자연스럽게 커졌다.

‘작전 변경이냐미...!
바로 다음으로 가자냐미.’

✦

냠냐미가 입으로 물어 온 나뭇가지를
마이크처럼 앞발로 세웠다.

“아아. 아아.”
(야옹. 야옹.)

✦

진지한 표정으로 목소리를 가다듬었다.

“행복을 선물할 수 있다면,
이런 방법은 어떠냐미?”
(냐아옹냐옹야옹냐옹?)

“박수냐미~~”
(냐아옹~)

귀에 앞발을 대고
박수를 유도하는 냠냐미를 보고
펠다들이 환호했다.

✦

“와와~~ 박수박수~!”

펠다들이 아까 받은
나머지 나뭇가지를 집어 들었다.

연이가 제일 먼저 머리 위로 크게 흔들었다.
콘서트 온 사람처럼, 좌우로 시원하게.

원이는 무릎 위에서 작게,
박자에 맞춰 까딱까딱 흔들었다.

정이는 처음엔 멋쩍은 듯 머뭇대다가,
슬그머니 들어 올렸다.
그러다 어느새 가장 크게 흔들고 있었다.

세 개의 나뭇가지가,
모닥불 앞에서 각자의 리듬으로 흔들렸다.

그리고 냠냐미는 노래를 시작했다.

✦

지나가던 사람들이
하나둘 걸음을 멈췄다.

“어머, 저 고양이
나뭇가지 들고 야옹거리는 거 봐.”

“노래하는 건가?
음이 하나도 안 맞네~”

“그래도 열심히 하는 야옹이
너무 귀엽다~~~”

수군대며, 사람들이 모여들었다.

작은 고양이가 나뭇가지를 마이크처럼 들고
야옹거리는 모습을, 다들 귀엽게 봤다.

사람들에게는 그저 고양이 소리일 뿐이었다.

✦

하지만 앉아 있는 펠다들에게는
완전히 다른 소리가 들렸다.

✦

노래가 흐르는 순간,
셋은 심장이 둥 하고
울리는 느낌을 받았다.

관객을 향해 말을 거는
이름 모를 가수의 목소리가 사방에서 들려왔다.

그것은 멜로디를 넘어
마치 음원처럼 완성된 노래였다.

냠냐미는 펠다들 하나하나를
눈에 담으며 마음으로 말을 걸었다.

냠냐미가 연이를 보며 노래했다.

‘연이는 웃는 게 예쁘냐미.’

“...괜찮아 다 잘될 거야~”

연이가 입을 가리고 잠깐 숨을 멈췄다.

✦

냠냐미가 원이를 보며 노래했다.

‘원이는 좋은 사람이냐미.’

“...넌 정말 멋진 사람~”

원이의 눈이 흔들렸다.

✦

냠냐미가 정이를 보며 노래했다.

‘멈춰 서도 괜찮냐미,
잘하지 못해도 괜찮냐미.’

“...좌절은 가뿐하게 밟아~”

정이의 입이 저도 모르게 벌어졌다.

✦

각자의 행복이, 각자의 두려움이,
그 노래 안에 들어 있었다.

언젠가 그 작은 고양이 앞에서,
무심코 흘렸던 말들이,
전부 노래가 되어 돌아오고 있었다.

‘...펠다들 곁엔
언제나 내 노래가 있을 거냐미.’

‘...행복은 알아차리는 만큼 내 것이냐미.’

냠냐미를 바라보는 셋의 눈이
촉촉해지기 시작했다.

✦ ✦ ✦

노래가 차오를수록
냠냐미의 몸이 변하기 시작했다.

먼저 꼬리 끝이 하늘빛으로 물들더니,
그다음 앞발과 뒷발로 번졌다.

그리고 이마에 세 줄. 양 볼에 한 줄.
하늘빛 줄무늬가 또렷하게 떠올랐다.

마지막으로 까맣던 두 눈이
빨려들 것 같은 푸른빛으로 물들었다.

깊고 푸른빛을 내는 눈은
눈부시게 반짝이고 있었다.

✦

냠냐미는 펠다들을 봤다.

불빛 아래,
셋의 눈이 별처럼 빛났다.

그들의 눈에서
각자 날아온 우주가 보이는 듯했다.

✦

‘...꼭, 먼 우주에서.
나를 만나러 와 준 별들 같냐미.’

그 별들이, 자기 앞에 앉아
노래를 듣고 있었다.

몇 번이나 마음속으로 연습했던
마지막 가사는 부르지 못하고
흥얼흥얼 넘어갔지만,

그 별들 앞에서 노래하는 이 순간,
냠냐미는 더없이 행복했다.

✦

가장 둥근, 꽉 찬 보름달이었다.

블루문 아래,
냠냐미의 그림자가
풀밭 위로 길게 드리웠다.

모닥불이 일렁일 때마다 그림자는
마치 커다란 날개가 퍼덕이는 것처럼 보였다.

✦ ✦ ✦

노래가 끝나자
서 있던 사람들이 박수를 쳤다.

“우와, 고양이가 무슨 공연을 다 하네!
분명히 뭔가를 말하고 싶었던 거 같아. 그치?”

“줄무늬가 생긴 것 같지 않아?”

“원래 있었을걸?”

“그랬나? 그런 것 같기도 하네.”

“너무 귀엽다. 영상 찍을걸.”

사람들은 신기해하다가,
금방 하나둘 흩어졌다.

푸르게 빛나던 두 눈이,
가장 먼저 까맣게 가라앉았다.

냠냐미의 줄무늬가
천천히 옅어지고 있었다.

색이 사라지면서,
냠냐미는 몸이 잠깐,
바람에 쓸려 갈 것처럼 가벼워지는 것을 느꼈다.

‘너무 열창했냐미.
힘이 스르르 빠지냐미.’

‘히히 그래도 기분 최고냐미.’

✦

펠다들은 아무도 말을 하지 못했다.

연이의 눈가가 붉었다.

‘연이는 웃는 게 예쁘냐미.’

원이는 가슴께를 한 번 눌렀다.

‘원이는 좋은 사람이냐미.’

정이는 모자 챙을 깊이 내렸다.

‘멈춰 서도 괜찮냐미,
잘하지 못해도 괜찮냐미.’

노랫말 위로 전해지는 냠냐미의 마음이
펠다들에게는 냠냐미가 몰래 속삭이는 말처럼 들렸다.

✦

“방금.”

연이가 겨우 입을 열었다.

“제 얘기가... 들어 있었던 거 같아요.”

“...저도요.”

원이가 말했다.

“...저도 들었어요.”

정이가 말했다.

✦

연이가 고인 눈물을 닦으며 말했다.

“뭐야 진짜.
고양이가 이렇게 사람 감동시켜도 되는 거야...”

원이도 냠냐미를 바라보다 웃었다.

“...고마워. 구미묘.”

정이는 말없이 가슴에 양손을 얹고,
오래 냠냐미를 봤다.
그리고 끄덕였다.

냠냐미가 지나가며
펠다들의 무릎을 콩. 하고 찍어줬다.

“화이팅 빔, 화이팅 빔, 화이팅 빔이냐미!”
(냐아옹냐 냐아옹냐 냐아옹냐!)

✦

셋이 냠냐미를 봤다.

냠냐미가 활짝 웃었다.

“오오 다들 울었냐미? 히.”
(냐앙야옹냐옹냐옹~)

셋은 소리 내 웃으며,
나뭇가지를 마구 흔들었다.

냠냐미는 흡족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냐냐~~ 서프라이즈 성공이냐미~~”
(냐아야옹야옹야옹냐옹~)

✦

모닥불이 타닥타닥 타올랐다.

넷이 그 곁에 둘러앉았다.

냠냐미는 속으로 생각했다.

‘이 시간이,
...끝나지 않았으면 좋겠냐미.’

✦

밤이 깊어지니
제법 쌀쌀한 바람이 불었다.

“블루문이다!”

달구경을 하러 나온 사람들이
웅성웅성거렸다.

냠냐미와 펠다들도 한참 달을 바라봤다.

✦

연이가 말했다.

“살면서 이렇게 행복했던 적이 있었나.”

정이도 달을 보며 말했다.

“이 밤이 가는 게 너무 아쉬워요.”

원이가 냠냐미에게 담요를 덮어줬다.

그리고 가방에서 망원경을 꺼내
오랜만에 달을 봤다.

‘잊을 수 없는 밤, 잊을 수 없는 달이네.’

✦

냠냐미는 별이 가득한 하늘을 쳐다봤다.

별똥별이 연달아 길게 흘렀다.

‘하나, 둘, 셋이냐미.’

펠다들은 보지 못했다.

그 아래,
파란 꽃 한 송이가 피어 있었다.

✦

멀리서
은빛 고양이 한 마리가,
라디오를 듣듯 가만히 노래를 듣고 있었다.

에메랄드빛 눈이,
노래하던 냠냐미를 오래 바라봤다.

✦

얌얌이가 살짝 웃었다.

그리움인지,
반가움인지 모를 미소였다.

✦ ✦ ✦

10장 「블루문 아래서」 끝 · 11장에서 계속

이 장에 다녀간 발자국

이 장에 다녀간 발자국

끝내 하지못한 마지막 가사는 언제 들려줄까. 대답할 준비는 되어있는데.

끝내 하지못한 마지막 가사는 언제 들려줄까. 대답할 준비는 되어있는데.

촉새

장면 장면이 그려져서 영화보는줄 알았어요..감동 ㅜ

장면 장면이 그려져서 영화보는줄 알았어요..감동 ㅜ

샤니

곧소풍갈것같더니 진짜갔구나 감동적이네요 읽는데 감동이올라오네

곧소풍갈것같더니 진짜갔구나 감동적이네요 읽는데 감동이올라오네

별보러갈래

3명의 펠다와 냠냐미의 소풍 간 모습이 너무 좋다~ㅎ 회색 냥이는 계속 따라 다니는게 멀까하고 계속 궁금해지네요.ㅎ

3명의 펠다와 냠냐미의 소풍 간 모습이 너무 좋다~ㅎ 회색 냥이는 계속 따라 다니는게 멀까하고 계속 궁금해지네요.ㅎ

반창고

분명 글을 읽었는데 시아가 더 어여쁘고, 더 괴어 보인다

분명 글을 읽었는데 시아가 더 어여쁘고, 더 괴어 보인다

문우리

또다른 고양이의 등장. 혹시.. 정이/연이/원이를 상징하는 고양이들이 계속 등장하는 스토리로 가진않을까? 다음 이야기들이 더욱 궁금해젔어요.

또다른 고양이의 등장. 혹시.. 정이/연이/원이를 상징하는 고양이들이 계속 등장하는 스토리로 가진않을까? 다음 이야기들이 더욱 궁금해젔어요.

세일러서니

정이도 같이 갔다😁😁 운전 해야 해서 집에 가서 다시 읽어야지~~

정이도 같이 갔다😁😁 운전 해야 해서 집에 가서 다시 읽어야지~~

차니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