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장 선명해질수록
겨울이
골목 안으로 들어왔다.
첫서리가 내린 아침이었다.
입김이 하얗게 번졌다.
✦
냠냐미가
사료 그릇을 들여다봤다.
‘어제 먹은 것보다
분명히 더 줄었냐미.’
덤덤하게 사료를 훔쳐 먹었던
회색 고양이의 눈빛이 떠올랐다.
‘또... 몰래 먹고 간 거냐미.’
이러면 나만 또
돼지고양이가 되는 거냐미.
냠냐미의 눈이 가늘어졌다.
‘안 되겠냐미.’
집주인으로서!
따끔하게 한마디 해야겠냐미.
(쉬익쉬익)
✦
냠냐미는
발소리를 죽이고,
수풀 쪽으로 다가갔다.
회색 고양이가 사라졌던
그 수풀이었다.
‘이러다가...
집도 탐내는 건 아니겠지냐미?’
냠냐미는
수풀을 헤치고 들어가
두리번거렸다.
✦
아무도 없었다.
‘어디 간 거냐미?’
!!
등 뒤에서
오싹한 기분이 들었다.
‘?!’
냠냐미는
아주 천천히
뒤를 돌아봤다.
✦
에메랄드빛
바다 같은 두 눈이,
어둠 속에서 빛나고 있었다.
아아악!!
냠냐미가 펄쩍 뛰었다.
✦ ✦ ✦
회색 고양이가
냠냐미를 봤다.
수풀 틈으로 든 볕에
털이 은빛으로 빛났다.
“내 집은 편하게 쓰고 있어?”
✦
냠냐미가 뒷발을 굴렀다.
허. 저건 이 몸이~~
먼저 발견한!
내~~ 집이냐미!!
...
은빛 고양이가 말했다.
“얌얌이야. ㄴ...”
냠냐미가 말을 끊고
한숨을 푹 쉬었다.
저 명패 때문에~
다들 헷갈릴 수가 있냐미.
냠냐미가 허리에 앞발을 얹었다.
이 몸은 얌얌이가 아니고~
냠~냐~미!냐미!
...
“내가, 얌얌이야.”
!!!!
냠냐미의 눈이
튀어나올 듯 동그래졌다.
‘명패에 붙은 이름이
진짜 있는 이름이었냐미?’
냠냐미의 눈알이
이리저리 굴렀다.
‘누군가 이 몸을 위해
만들어 놓은 게 아니었냐미?’
냠냐미가 앞발을 머리에 대고
잠시 생각에 잠겼다.
‘그러고 보니...
...
다들... 내 이름을 몰랐냐미.’
✦
‘얌얌이 아니었어?’
‘냐미냐미 하는 거 보니까
냐미냐미가 이름인가?’
‘저 고양이 이름이 냠냠이? 인가요?’
지난 펠다들과의 대화가
스르륵 지나갔다.
✦
냠냐미의 꼬리가
바닥으로 내려왔다.
냠냐미가 웅얼거렸다.
그럼...
왜 빈 집이었냐미?
...
냠냐미가 눈을
예쁘게 깜빡깜빡거렸다.
이렇게 예쁜 고양이는
처음이라...
양보한 거냐미??
...
“전 주인이 만들어준 집인데,
자유롭게 돌아다니는 게 편해서.”
...
아하~! 자~유~!
맞냐미 맞냐미.
자유는 아주 중요하냐미.
✦
냠냐미가 태도를 바꾸어
살갑게 웃어 보였다.
그... 사료는!
마음~껏 먹으라냐미.
선심 쓰듯
가슴을 내밀고 말했다.
자동으로 채워지는 것처럼
느껴질 거냐미!
성실한 원이를 믿고
배짱을 부렸다.
✦
얌얌이가 대답이 없자
냠냐미가 우물쭈물 물었다.
...집...
나가라고... 할 거냐미...?
냠냐미의 수염이
축 처졌다.
그 소리는 너무 작아
잘 들리지 않았다.
✦
얌얌이가 물었다.
“이상한 꿈, 꾸지 않아?”
꿈??
냠냐미의 수염이 휘익 올라갔다.
요즘~!
꿈자리가 뒤숭숭하긴 하냐미!
“어떤 꿈이었어?”
...
냠냐미가 무언가를
생각하는 표정을 지었다.
...
“혹시 꿈에 커다란 나무ㄱ...”
아아악!! 나도나도냐미!!
...
“먼저 말해.”
가물가물하냐미.
...
“혹시 꿈에 큰 나무랑 파란ㄲ...”
악! 맞냐미!
파란 꽃이!! 나오냐미!
...
“응. 먼저 말해줘.”
근데 그게 끝이냐미.
...
“혹시 꿈에 커다란 나무...”
아아악!!
그럼 같은 꿈을 꾸는 거냐미??
얌얌이가
냠냐미의 입을 막았다.
읍!
“내가 먼저 말할게.”
냠냐미가 끄덕이자
막았던 앞발을 떼고 말했다.
✦
“커다란 나무,
파란 꽃이 가득 핀 들판.”
“처음엔 내가 자주 하던
상상인 건가 했어.”
“...그런데
너를 보고 있으면
가끔씩 이곳이, 그 꿈속처럼 느껴져서...”
냠냐미가 눈을 크게 뜨고
얌얌이를 열심히 쳐다봤다.
“...보아하니 무슨 말하는지
모르는 눈인데.”
냠냐미가 끄덕이며
커다란 눈을 깜빡였다.
...
“만약 우리가
정말 같은 꿈을 꾸고 있는 거라면,
맞춰보면 뭐가 나오지 않을까 해서.”
...
빨려 들어갈 것 같은
청록빛 눈이
냠냐미의 답을 기다렸다.
‘스읍... 분위기 보니...
뭐라도 도움이 되어야
집이 안전할 것 같은데냐미...’
냠냐미가 머리를 쥐어짜며
꿈속을 기억해내려고 했다.
아!! 하나 기억났냐미!
“응. 말해줘.”
젤리??를 고르는 꿈을 꿨냐미!
근데... 맛은 모르냐미.
...
내가 고른 게 아니라...
누가 고르는 걸 봤냐미!
이 꿈 맞냐미?
...
“...아니.”
얌얌이가 고개를 저었다.
“나는 어떤 아이가
인자해 보이는 할아버지의 손을 잡고
가는 걸... 보는 꿈이었어.”
✦
냠냐미가 턱에 앞발을 대고
생각에 잠겼다.
‘젤리도 먹을 수 있다는 뜻의
꿈일까냐미?’
✦
“구미묘~?
어라? 산책 갔나?”
저쪽에서
원이 목소리가 들렸다.
인기척이 들리자,
얌얌이는 순식간에
눈앞에서 사라졌다.
‘헛! 빠르냐미...’
냠냐미도 수풀에서 빠져나왔다.
✦ ✦ ✦
냠냐미는 얌얌이집 명패가 달린
자신의 보금자리를 봤다.
‘휴. 집주인 씨가 길이 편하셔서 다행이냐미~
이 몸은 길고양이는 힘들고 싫냐미~’
‘이 집은
내 집이 맞냐미. 키키.’
냠냐미는 제집인 양
더 살갑게 집 주위를 폴짝거렸다.
홈~~ 스~윗~ 홈~~~이 냐~미
폴짝.
폴짝.
원이 왔냐미~~
(...)
“어? 구미묘 목소리가
왜 나오다 말다 해?”
원이가 갸웃했다.
“괜찮아?
어디 아픈 건 아니지?”
냠냐미도
원이랑 같은 방향으로 갸웃했다.
오잉? 나 멀쩡하냐미!!
(...)
고양이 소리가
더듬더듬 나오는 것처럼 들렸다.
냠냐미가 한 번 더 말했지만,
쉰 소리만 새어 나왔다.
(......)
‘...? 목소리가 왜...
나오다 말다 하냐미...?’
원이가 사료 그릇을 정리하며
걱정스런 투로 말했다.
“요즘 바람이 차.
안 그래도 이거,
바람막이 해주려고 가져왔어.”
얌얌이집 입구에
바람을 막을 수 있는
천이 생겼다.
냠냐미가 앞발로
목을 만졌다.
‘찬바람에... 겨울 오자마자
감기에 걸려 버린 거냐미...? 힝.’
원이가 사료를 채우다
냠냐미를 봤다.
“근데 구미묘,
겨울 되니까 털이
완전 눈처럼 새하얘졌네.
눈 오면 못 찾겠는걸.”
원이는 채우던 사료를 마저 채웠다.
“저번에 노래 불러준다고 무리했나 봐.
오늘은 밥 먹고 푹 자자. 알겠지?”
(냐...ㅇ앍~)
소리가 원이의 귀에
닿지 않고 흩어졌다.
“...에구구.
들어가서 얼른 푹 쉬어요.”
원이가 손을 흔들며 인사하고,
골목을 나갔다.
냠냐미는 그 뒷모습을 향해
한 번 더 울었지만, 닿지 않았다.
✦
냠냐미가 멍하니,
자신의 앞발을 봤다.
경계가 흐릿했다.
앞발을 쥐었다
폈다 해 봤다.
그럴 때마다 윤곽이,
물에 번진 먹처럼
조금씩 풀어졌다.
뭐... 뭐냐미...?
냠냐미는 그동안 먹은
간식을 역산해 보았다.
냠냠볼, 닭가슴살, 김밥, 과자, 츄르, 캣닙, 사탕...
‘아. 아니냐미.’
냠냐미가 고개를 저었다.
냠냠볼, 닭가슴살, 김밥, 과자, 츄르, 캣닙.
‘젤ㄹ...젤리는 안 먹었는데냐미.’
대체... 내가...
뭘 잘못 먹은 거냐미. 흑흑.
✦ ✦ ✦
눈물이 맺히려는 찰나,
눈앞에 파란 나비가 지나갔다.
예쁜 나비냐미!
냠냐미가 울상 짓다가,
홀린 듯 파란 나비를 따라갔다.
냠냐미 뒤로,
그림자 하나가 같이 움직였다.
정신없이 나비를 따라가다 보니
낯선 장면이 눈에 들어왔다.
✦
아아아악~~~!!
여기가 어디냐미!
내 집 어디 갔냐미!!
냠냐미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파란 나비는
어디로 사라졌냐미!
✦
「수호수」
눈앞, 커다란 울타리 안에
큰 버드나무가 보였다.
짧은 빗자루 끝처럼
꺾인 나뭇가지들은
늘어지는 가지 하나 없이
나무기둥에 달려 있었다.
✦
??
냠냐미는
커다란 나무를 바라보았다.
한 발.
한 발.
자기도 모르게
나무 쪽으로 다가갔다.
가까워질수록,
가슴 안쪽이 알 수 없이 두근거렸다.
‘처음 보는 나무인데...
어디서 본 것 같은
기분이 드냐미...?’
냠냐미가
나무 앞으로 바짝 다가갔다.
그리고
저도 모르게
나무에 앞발을 댔다.
그 순간.
꿈속에서
무음이었던
대화가 들렸다.
✦
『...샐리. 그럼, 샐리라고 불러줘.』
『...ㅅ릭스.』
✦
?!!!
소리가,
머릿속이 아니라
앞발을 타고 몸 안으로 흘러들어왔다.
‘...샐리?? ㅅ릭스??’
냠냐미가 흠칫 놀라,
앞발을 얼른 뗐다.
...샐리? 릭스...?가 뭐냐미...?
그 이름이 계속 머릿속을 맴돌았다.
✦
“맞아. 더 기억나는 거 있어?”
어느새 얌얌이가 와 있었다.
얌얌이가 나무를 올려다봤다.
“...사람들이 꿈속에서 그 나무를
비슷한 소리로 부르는 걸 들었어.”
✦
‘릭스...? 샐리...?’
그 이름을 되뇔수록
잡히지 않던 무언가가
또렷해지고 있었다.
갑자기 머리가
깨질 듯이 아파 왔다.
머리가...
아프냐미.
냠냐미가 앞발로 머리를 감쌌다.
✦
이름이 선명해질수록
앞발의 경계가, 온몸이,
아까보다 더 풀어져 있었다.
윤곽이 흐려진 자리로
희미한 푸른빛이 비쳐 나왔다.
✦
선명해지는 것과
흐려지는 것이
서로를 등지고
같은 속도로 달리고 있었다.
✦
겨울 초입의 달이
그 위로 희미하게 떠 있었다.
✦ ✦ ✦
13장 「선명해질수록」 끝 · 14장에서 계속
문우리
별보러갈래
샤니
세일러서니
차니맘
틱톡시아중
촉새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