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장 선명해질수록
겨울이, 골목 안으로 들어왔다.
첫서리가 내린 아침이었다.
입김이 하얗게 번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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냠냐미가 사료 그릇을 들여다봤다.
자신이 먹은 양보다 현저하게 줄어 있었다.
...또 또 그 도둑고양이냐미.
냠냐미의 눈이 가늘어졌다.
오늘은 도둑고양이를 꼭 잡아야겠냐미.
덤덤하게 사료를 훔쳐먹었던
회색 고양이의 눈빛이 떠올랐다.
......
배고파서 먹는건 괜찮냐미...
하지만!! 원이가 오해해서 이 몸이 억울하냐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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냠냐미는 발소리를 죽이고, 수풀 쪽으로 다가갔다.
은빛이 비쳤던, 그 수풀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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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풀을 헤치고, 깊은 곳으로 들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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엥. 아무것도 없냐미?
두리번거렸지만, 마른 가지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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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에서 호시탐탐 이 몸의 집과 사료를 노리는 것 같냐미.’
돌아 나오려는데,
등 뒤에서,
오싹한 기운이 스쳤다.
‘?!’
냠냐미는
아주 천천히 뒤를 돌아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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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메랄드빛.
바다 같은 두 눈이,
어둠 속에서 빛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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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아악!! 깜짝 놀랐냐미!
냠냐미가 펄쩍 뛰었다.
은빛 고양이가, 가만히 냠냐미를 봤다.
“집을 쓰는 걸로는, 모자란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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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슨 소리냐미!!
저건 내가 먼저 발견한~! 내 집이냐미!!
냠냐미가 발끈했다.
은빛 고양이가 말했다.
“내가, 얌얌이야.”
냠냐미는 화들짝 놀랐다.
‘얌얌이냐미?! 명패에 붙은 이름이 진짜 있었냐미..?
냠냐미 이름을 착각해서... 이 몸을 위해 만들어 놓은게 아니엿냐미..? ’
그러고보니.. 원이도..
‘얌얌이 아니었어?’
연이도.
‘이름이 뭐야?’
정이는..
‘이 고양이 이름이 냠냐미인거야?’
지난 펠다들과의 대화가 스르륵 지나갔다.
‘근데... 왜 빈 집었냐미...
그 동안은 어디에서 어떻게 산 거냐미...’
‘설마 이렇게 예쁜 고양이...
나를 위해...??냐미??!!!’
“그런건 아니고, 길이 편해서.
그건 전 주인이 만들어준 집이야.”
...억.
냠냐미의 수염이 축 처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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뻘쭘해진 냠냐미가, 한껏 살갑게 웃어 보였다.
그러더니 선심쓰듯 가슴을 내밀며 말했다.
사료는!!
자동으로 채워지는것 처럼 느껴질거냐미!
마음~껏 먹으라냐미.
성실한 원이를 믿고 배짱을 부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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얌얌이는 그런 냠냐미를 잠깐 보다가, 물었다.
“너 이상한 꿈, 꾸지 않아?”
꿈?? 흠.. .요즘 꿈자리가 뒤숭숭하긴 하냐미..
가만히 쳐다보던 얌얌이는
먼저 이야기를 꺼내야하나 싶어 말문을 열었다.
혹시 꿈에 커다란 나무ㄱ..
아아악!! 나도나도냐미!!
“응. 일단 말을 좀 들ㅇ..”
파란 꽃!! 나오지 않냐미??
“맞아. 푸른 꽃ㄲ..”
아악!! 그럼 같은 꿈을 꾸는 거냐미??
얌얌이가 냠냐미의 입을 막았다.
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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얌얌이가 천천히 말했다.
“예전에 본 풍경 같기도 하고,
그냥 내가 자주하던 상상 같다고 생각했어.
...그런데.
너를 본 순간.
마치 이곳이, 그 꿈속처럼 느껴질 만큼.
이질감 없는 기운이 느껴졌어.”
냠냐미가 눈을 깜빡였다.
빨려 들어 갈 것같은 청록빛 바다색 눈이
빤히 쳐다보고 있는 것이 느껴지니,
자신도 뭐라도 말해줘야 할 것 같은 압박감이 들었다.
흠..
난 어제.... 젤리?? 를 고르는 꿈을 꿨냐미.
아! 근데 내가 고른 건 아니라...
맛을 모르냐미.
너도 젤리 꿈 꿨냐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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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
얌얌이가 고개를 저었다.
“...나는. 어떤 남자 꼬마가.
인자해 보이는 할아버지의 손을 잡고 가는 걸, 보는 꿈이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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냠냐미가 턱에 손을 대고 생각에 잠겼다.
흠. 젤리도 먹을 수 있다는 뜻의 꿈일까냐미...
초콜릿, 사탕, 과자, 김밥까지는... 맛있게 먹었냐미.
✦
저쪽에서 원이 목소리가 들렸다.
“냠냐미? 어라? 산책 갔나?”
인기척이 들리자,
얌얌이는 순식간에 눈앞에서 사라졌다.
‘헛! 빠르냐미...’
✦
냠냐미가 수풀에서 폴짝폴짝 뛰어, 원이에게 갔다.
왔냐미~~!
냠냐미는, 구멍 난 물통에 든 물처럼.
몸에 힘이 빠지는 걸 느꼈다.
‘흐... 이상하냐미. 꿈이 선명해질수록
이 몸이 흐물흐물해지는 것 같냐미.’
✦
(폴짝, 폴짝)
사료를 훔쳐먹던 고양이가 진짜 집의 주인이라는 것을 알고 나자,
도둑고양이 해명은 필요없다는 생각이 든 냠냐미는
제집마냥 더 살갑게 폴짝 거렸다.
왔냐미 왔냐미. 나 여기있냐미!
“어? 냠냐미 목소리가 왜 나오다 말다 해? 괜찮아?”
원이가 갸웃했다.
“어디... 아픈 건 아니지?”
냠냐미도 갸웃했다.
오잉? 나 멀쩡하냐미!!
냠냐미의 소리가, 원이에게 제대로 전해지지 않았다.
고양이 소리조차도 더듬더듬 나오는 것처럼 들렸다.
???뭐냐미..?
냠냐미가 한 번 더 말했다.
(......)
소리가, 입 밖으로 나오다 말다 하며
원이의 귀에 닿지 않고 흩어졌다.
‘...? 뭐.. 뭐냐미....?? 목소리가 왜.. 나오다 말다하냐미..?’
원이는 걱정하며,
사료 그릇을 정리하고 있었다.
“요즘 돌아다니구 서프라이즈 한다고 무리했나보네.
구미묘, 오늘은 밥 먹고 푹 자자.”
원이가 사료를 채웠다.
“잠이 보약이라는 말. 알아?”
“여기 두고 갈테니까,
오늘은 푹 자! 비가 와도 나가지 말고!”
...
“알겠지?”
(냐옹옹~)
냠냐미의 소리는 점점 힘이 없어보였다.
“...에구구.
목 많이 아파보이네. 말시키지 말아야지.”
원이가 손을 흔들며 인사하고, 골목을 나갔다.
냠냐미는 그 뒷모습을 향해 한 번 더 울었지만,
멀어진 원이에게까지 닿지 않았다.
✦
냠냐미가 멍하니, 자신의 앞발을 봤다.
앞발의 경계가 흐릿했다.
발을 쥐었다 폈다 해 봤다.
그럴 때마다 윤곽이,
물에 번진 먹처럼 조금씩 풀어졌다.
뭐... 뭐냐미..?
나... 죽는 거냐미???
냠냐미는 요 며칠 먹은 간식을 역산해 보았다.
냠냠볼. 닭가슴살. 김밥. 츄르. 사탕. 초콜릿.
‘젤ㄹ..젤리는 안먹었는데...’
대체...
내가...
뭘... 잘못 먹은 거냐미... 흑흑.
눈에 눈물이 맺히려는 찰나였다.
눈앞에
파란 나비가 지나갔다.
어?
그때 그 나비... 아니냐미?
냠냐미가 울상 지었던 표정은 잊고,
홀린 듯 파란 나비를 따라갔다.
냠냐미 뒤로,
어두운 그림자 하나가 같이 움직였다.
정신없이 나비를 잡으려 뛰어가다 보니.
처음보는 풍경이 눈에 들어왔다.
아아아악!!
여기가 어디냐미! 내 집 어디갔냐미!!
파란 나비는 또 어디로 사라졌냐미!
다시 나와서 내 집을 안내하라냐ㅁ...
눈앞에, 커다란 울타리 안에 큰 버드나무가 보였다.
[수호수]
✦
냠냐미는 커다란 나무를 바라보았다.
*...??
...
왜 이렇게
...
익숙한...
기분이 드는거냐미..?*
냠냐미는
한 발,
한 발.
나무 쪽으로 다가갔다.
가까워질수록,
가슴 안쪽이 알 수 없이 두근거렸다.
‘처음 보는 나무인데...
어디서 본 것 같은 기분이 드냐미..?’
냠냐미가 나무앞으로 다가가
저도 모르게 나무에 앞발을 댔다.
그 순간.
꿈속에서 무음이었던 대화가.
들렸다.
✦
『…샐리. 그럼, 샐리라고 불러줘.』
『…살릭스.』
✦
?!!!
소리가, 머릿속이 아니라
앞발을 타고 몸 안으로 흘러들어왔다.
...샐리?? 살릭스??
...살릭...
살릭스??!!!
냠냐미가 흠칫 놀라, 앞발을 뗐다.
손을 뗐는데도,
그 이름이 계속 맴돌았다.
‘살릭스...?’
살릭스.
그 이름을 되뇌일수록 잡히지 않던 무언가가 또렷해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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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맞아. 살릭스.”
뒤에는, 어느새 얌얌이가 와 있었다.
얌얌이가 나무를 올려다봤다.
“...사람들이, 꿈속에서 그 나무를 그렇게 부르는 걸 들었어.”
✦
냠냐미는
갑자기, 머리가 깨질 듯이 아파 왔다.
냠냐미가 앞발로 머리를 감쌌다.
냠냐미 몸의 경계가, 점점 흐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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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이 선명해질수록,
앞 발의 경계가, 온 몸이,
아까보다 더, 풀어져 있었다.
윤곽이 흐려진 자리로,
희미한 하늘빛이 비쳐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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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명해지는 것과,
흐려지는 것이.
서로를 등지고
같은 속도로 달리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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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 초입의 달이, 그 위로 희미하게 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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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장 「선명해질수록」 끝 · 14장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