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장 시들기 전에
단풍이 다 지기도 전에
가을은 골목을 빠져나가고 있었다.
골목 안 나뭇잎은 이제 반 넘게 졌다.
성긴 가지 사이로 찬 기운이 스몄다.
✦
냠냐미가 스케치북을 들여다봤다.
세잎클로버 세 송이가
바짝 말라 있었다.
‘아주 예쁘게 말랐냐미.’
처음 땄을 때보다
조금 작아졌지만,
모양은 그대로였다.
이제~! 줄 수 있겠냐미. 히히.
냠냐미가 클로버를 하나씩 살펴봤다.
원이를 닮은 것.
연이를 닮은 것.
정이를 닮은 것.
가슴이 콩닥거렸다.
가장 빨리 오는 사람부터 줄 거냐미~!
오래 기다린 선물이었다.
✦ ✦ ✦
골목 입구에서
발소리가 났다.
냠냐미의 귀가 쫑긋했다.
‘원이냐미!’
원이가 외투를 여미며 들어왔다.
“구미묘~ 밥 잘 먹고 있었어?
벌써 좀 춥다, 그치?”
냠냐미가 스케치북 쪽으로 갔다.
(냐냐~~)
“오늘 구미묘 기분 좋아 보이네~”
냠냐미가 잎 양쪽이 둥글게 말린
클로버를 입에 물고 왔다.
그리고 원이 앞에 내려놓았다.
“어? 아~ 저번에
물고 온 그건가?”
원이가 쪼그려 앉아,
클로버를 손바닥에 올려놓고 들여다봤다.
“세잎클로버네?
예쁘게 잘 말렸다.”
원이를 닮은 행복이냐미!
(냐옹냐아옹냐옹야옹!)
원이는 그 말을 듣지 못했다.
원이가 클로버를
다시 바닥에 내려놓으려 하자
냠냐미가 머리로 원이의 손을 올렸다.
원이가 그런 냠냐미를
귀여워하며 물었다.
“왜~ 이거 나 주려구?”
당연하냐미~
(냐냐~)
냠냐미의 짙은 눈동자가
그렇다고 말하는 듯했다.
“정말?”
원이가 손바닥에
올린 클로버와
냠냐미를 번갈아 보며 웃었다.
“구미묘... 고마워.
잘 간직할게!”
냠냐미가 원이의 무릎에
머리를 비볐다.
✦
원이가 클로버를 지갑 속에,
소중히 끼워 넣었다.
냠냐미의 꼬리가 살랑살랑 흔들렸다.
✦ ✦ ✦
멀리서부터
일정한 발소리가 들렸다.
‘정이냐미!’
평소처럼 아침 달리기
마지막 바퀴를 돌며 정이가 왔다.
정이가 냠냐미 앞에 말없이
쪼그려 앉아 주먹을 내밀었다.
냠냐미가 스케치북 쪽으로 갔다.
(냐냐~)
“어?
화이팅 빔 받아야 하는데...”
내민 주먹이 바닥으로 떨어졌다.
냠냐미가 잎 하나가 봉긋 솟은
커다란 클로버를 물어 왔다.
그리고
정이의 주먹 위에
올려놨다.
반응을 기다리는
냠냐미의 눈이
정이를 쳐다보고 있었다.
“이거... 내 거야?”
정이가 모자 챙을 위로 올렸다.
손등에 잘 말린
클로버가 놓여 있었다.
정이를 닮은 행복이냐미.
오늘도 무리하지 말라냐미.
(냐앙냐앙야옹. 야옹야옹냐.)
정이는 클로버를 바라봤다.
‘이렇게 자꾸 받아도 되는 걸까.’
정이가 웃으며 클로버를
손바닥에 옮겼다.
“이거 운동화 끈에 묶고 다닐까?”
정이가 제자리에서 뛰는 시늉을 했다.
“멀리 못 가도, 같이 뛰는 기분 나게.”
“아 아니다. 잃어버리면 안 되니까...”
정이가 클로버를
조심스레 주머니에 넣었다.
“예쁘게 코팅해서!
가방에 달고 다닐게!”
그리고 두꺼운 두 손을 모았다.
“감사합니다!”
냠냐미의 앞발이 콩.
정이의 모은 손에 닿았다.
화이팅 빔이냐미~
(냐아옹냐~)
냠냐미가 활짝 웃었다.
정이는 더 환하게 웃어 보였다.
“옷 가지러 집에 한번 더 다녀올 건데,
겨울 합숙 들어가기 전에
화이팅 빔 실컷 받아 가도 돼?”
정이는 손가락으로
제 손등을 톡톡 치며 말했다.
물론이냐미~!
(냐냐~!)
“좋아. 오늘은 두 바퀴 더 뛰고 간다!!”
화이팅 빔을 받은 정이는
오늘도 일정하게 멀어졌다.
✦ ✦ ✦
스케치북에
하나 남은 클로버가
주인을 기다리고 있었다.
가운데 흰 줄이
유난히 진한 클로버였다.
✦
냠냐미는
연이가 들어오던
골목 입구를 봤다.
다음 날도.
그다음 날도.
발소리가 날 때마다
고개를 들었지만,
연이의 걸음은 아니었다.
✦
연이의 말이 떠올랐다.
‘...다시 종종 보러 올게!’
‘...종종 올게’
‘종종 올게’
‘종종’이라는 말이,
날이 갈수록 조금씩 멀어졌다.
✦
냠냐미는 아침마다
스케치북을 열었다가 닫았다.
또렷했던 가운데 흰 줄이
조금씩 선명함을 잃어갔다.
‘가장 예쁠 때...
주고 싶었는데냐미.’
✦
며칠 뒤,
클로버의 잎 끝부분이
쪼글쪼글해졌다.
✦
그리고
또 며칠 뒤,
클로버의 가장자리가
옅은 갈색으로 바래기 시작했다.
냠냐미가 클로버를 봤다.
‘색이 점점 빠져가냐미.’
그래도,
아직까지는 괜찮냐미.
‘바쁜 건 좋은 거냐미.’
✦
요란한 발소리에
냠냐미는 골목 입구를 서성였다.
깔깔대는 학생들의 목소리가 멀어졌다.
한참을 서 있다가,
냠냐미는 다시 돌아왔다.
연이가 오가던 골목에는
바람만이 오갔다.
✦
발랄하게 떠드는 통화소리에
냠냐미는 벌떡 일어나
클로버를 물고 나왔다.
근처를 지나는 여자의 목소리였다.
냠냐미는 클로버를 다시,
제자리에 가져다 두었다.
✦
연이는, 오지 않았다.
✦
냠냐미는 돌 뒤로 갔다.
‘우리 냠냐미
심심하기 전에 올게!’
...
‘아직, 심심하지 않냐미.’
냠냐미는 방석으로 올라가
몸을 웅크렸다.
그렇게 며칠이, 더 지났다.
✦
클로버는 그사이,
조금씩 더 말라갔다.
골목 안 나뭇잎도,
거의 다 졌다.
✦
카드가 놓인 자리.
그 위에는,
갈색으로 말라가는
잎 하나가 덮여 있었다.
처음엔 푸르렀던 잎이었다.
✦
냠냐미는
연이의 클로버를
말라가는 잎 위에 올려 두었다.
연이가 오면,
바로 줄 수 있게
여기 놓아두자냐미.
둘 다, 나란히
색이 바래가고 있었다.
아직까진... 괜찮냐미.
냠냐미는 그 말을
매일 작게 되뇌었다.
시드는 속도를
마음으로는
따라잡을 수 없었다.
✦ ✦ ✦
밤이 깊었다.
냠냐미는 눈을 감고
앞발을 모았다.
고롱고롱.
✦
눈앞에
작은 젤리
네 개가 놓여 있었다.
별. 꽃. 달. 그리고 눈.
각각 다른 빛으로 일렁였다.
어디선가
손 하나가 뻗어 왔다.
얼굴은 보이지 않았다.
작고, 여린 손이었다.
머뭇거리는 손.
그 손이
눈 모양 젤리를 집었다.
그리고
입으로 가져갔다.
그 순간,
웅성웅성.
...오페이크...
웅성웅성.
어디선가
낮은 소리들이 뜨문뜨문 넘어왔다.
무슨 말인지는, 알 수 없었다.
갑자기 온 세상이 깜깜해졌다.
밤을 덧칠한 듯한 어둠을
가늘게 가르는 빛이 보였다.
짙은 그믐달이었다.
이유를 알 수 없는 속상함이
가슴을 묵직하게 눌렀다.
냠냐미는 그 달을 올려다보았다.
✦ ✦ ✦
!!
가슴이 묵직한 채
눈을 떴다.
꿈은 사라졌는데,
무거운 기분이 남아 있었다.
✦
허. 뭐냐미...
요새 꿈자리가 뒤숭숭하냐미...
서늘한 바람에
자다 깬 냠냐미의 털이 삐쭉 섰다.
으으 겨울이 오려나냐미?
벌써 쌀쌀하냐미.
냠냐미가 앞발로 눈을 비볐다.
‘눈곱인가냐미.
앞발이 흐릿하게 보이냐미.’
그리고 방석 모서리를
반대로 돌렸다.
‘머리를 이쪽에 두고
자야겠냐미.’
젤리도, 손도 꿈과 함께
흐릿해졌다.
그 무거운 달만 남았다.
✦
냠냐미는
크레파스를 집었다.
저번과 똑같은
커다란 동그라미를 그리고
왼쪽으로 굽은 선을 그렸다.
그리고 선 바깥쪽을
칠하기 시작했다.
냠냐미가 고개를 저었다.
...
그때... 그냥 줬으면
연이가 혼자라도
가장 예쁜 모습을
볼 수 있었을 텐데냐미.
...속상해서 심란한 꿈을 꾸는 거냐미.
대충 넘겨짚어봤지만
묵직한 기분은 사라지지 않았다.
✦
냠냐미가 두리번거렸다.
‘뭐냐미...
누군가가 지켜보고
있는 기분이 드냐미.’
수풀이 흔들렸다.
‘이게 다 이상한 꿈 때문이냐미.
역시 오늘은 머리를 다른 쪽으로 하고 자야겠냐미.’
두 개의 에메랄드빛이
얌얌이집 쪽으로 한 발짝 나오려다,
멈추고, 사그라졌다.
✦
냠냐미가 자리에서 일어나
카드 쪽을 봤다.
마른 잎 위의
연이 클로버는
밤새 색이 더 바래져 보였다.
냠냐미는 그 옆에 앉았다.
‘연이를 거짓말쟁이로
만들 수는 없냐미.’
그리고 돌 뒤를 봤다.
‘아직 괜찮냐미.
심심하지 않냐미.’
✦
골목 위로 뜬 달은
어느새 반보다 더 기울어져 있었다.
✦ ✦ ✦
12장 「시들기 전에」 가을 끝 · 13장 겨울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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촉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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