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장 낮에 뜬 하현달
가을이 제법 깊어졌다.
노랗게 물든 잎이 하나둘
떨어지기 시작했다.
바닥의 잎이 발에 밟혀
사그락거렸다.
✦
냠냐미는 방석 아래 있던
클로버 세 개를 꺼내
하나씩 스케치북 사이에 끼웠다.
양쪽이 둥글게 말린 잎모양이
머리 모양이랑 똑같냐미. 히히.
가운데 선명한 흰 줄이
목걸이랑 똑같냐미. 히히히.
봉긋 솟은 모자랑
제일 큰 덩치가 아주 똑같냐미. 히히.
냠냐미는 잘 눌린 클로버를
바짝 말려 선물해 줄 생각에
가슴이 콩콩 뛰었다.
✦
꽉 찼던 달이
한쪽부터 야금야금 깎였다.
낮인데도,
희미하게 떠 있었다.
그날 밤엔...
꽉 찼었는데냐미.
소풍 가던 밤.
나뭇가지. 모닥불. 노래.
별 같던 눈들.
냠냐미는 스케치북을 넘겼다.
그리고 아주 커다란
동그라미를 그렸다.
가슴 한쪽이
아직도 따뜻했다.
✦
카드 위의 잎은,
색이 더 빠져 있었다.
처음엔 푸르렀던 잎이
이제는 끝부터 누렇게 말라 가고 있었다.
냠냐미는 그 잎을 한참 봤다.
✦ ✦ ✦
골목 입구에서부터
통화소리가 점점 가까워졌다.
냠냐미의 귀가 쫑긋했다.
‘연이냐미!’
“에 갑자기요?
대리님 완전 사랑꾼이시네~
아니 그럼 회사는 어쩌구요.”
“어... 음. 생각해볼게요. 네네.”
통화소리가 점점 크게 들렸다.
“안 그래도 저도 오늘 아침에
갑자기 연락 받고
동생이랑 한참 전화하고
정신 하나도 없었거든요.”
“일단 알겠습니다.
날짜 정해지면 시간 빼볼게요.
잘 되려니까 일이 한번에 몰리네요. 하하.”
“다녀오세요. 네. 네~”
연이가 핸드폰을 주머니에
넣으며 손을 흔들었다.
“냠냐미~! 나 왔어!”
왔냐미~~!
✦
연이가 냠냐미 곁에 앉았다.
“냠냐미 오늘도 귀엽네~?”
연이의 손이 무심코
냠냐미의 머리로 뻗었다.
당연하냐미~!
냠냐미가 한 발
거리를 두고 멈췄다.
✦
연이의 표정이
미묘하게 식었다.
연이가 손을 거두고
냠냐미를 바라봤다.
“...넌 원래
마음을 잘 안 주는 거야?
아무리... 마음을 많이 줘도?”
...
냠냐미의 수염이
미묘하게 떨렸다.
‘난 마음을
주고 있냐미.’
서로의 그림자가
길게 늘어져 닿아 있었다.
‘이 거리는,
소중한 사람을
미워하지 않을 수 있는
가장 가까운 거리냐미.’
✦
연이의 표정이
평소대로 돌아왔다.
“대리님네 고양이는
데려온 지 얼마 안 돼서부터
껌딱지가 따로 없대. 크크.”
연이가 말하면서
냠냐미의 표정을 살폈다.
“뭐! 고양이도
성격이 다 다른 거니까~”
“그치?”
연이가 장난처럼 웃었다.
그 끝이, 조금 쓸쓸해 보였다.
✦
냠냐미는 살짝 거리를 둔 채로,
그런 연이를 지켜봤다.
✦ ✦ ✦
연이는 냠냐미를 쳐다보다가
손가락을 꼼지락거렸다.
...
연이가 헛기침을 했다.
그리고 조심히 입을 열었다.
“저... 냠냐미
혹시... 우리 집에...”
...
‘...이곳의 행복을,
내가 가져가면 안 되겠지.’
연이가 골목을
한번 둘러보더니 말을 삼켰다.
“...아니다.”
...
“냠냐미.”
...
“언제나 행복해야 해.
알겠지?”
‘보고 싶지만,
어쩔 수 없겠지.’
평소와 다른 표정이었다.
냠냐미는 말없이
연이를 지켜보다가,
입을 열었다.
연이도,
언제나 행복해야 하냐미!
(냐옹냐옹냐아옹냐옹!)
연이는 그 말을 알아듣지 못했다.
그저 냠냐미가 야옹, 하고
우는 줄로만 알고,
한 번 더 웃었다.
✦ ✦ ✦
해가 기울 무렵.
연이가 자리에서 일어섰다.
✦
“나, 멀리 이사 가.”
냠냐미가 놀란 눈으로 쳐다봤다.
“사업 때문에.
그... 아예 안 온다는 건 아니고!
거리가 멀어져서...”
연이가 신발 끝을 봤다가
냠냐미를 봤다가 했다.
“일이 정리되면
다시 종종 보러 올게!
매일 오겠다는 약속,
못 지키게 되어서 미안해...”
“펠다들한테도 잘 말해줘!
인사도 못하고 가네.”
...
“기다리지 않게
미리 말해주고 싶어서.”
“안 기다릴 수도 있겠지만.”
냠냐미가 그런 연이를 계속 봤다.
‘누군가를
기다리지 않으려고 하지만,
그렇다고...
기다리지 않는 것은 아니냐미.’
(냐아~)
냠냐미는 말 대신,
울음소리를 냈다.
평소 괜찮다고 할 때와
매우 비슷한 소리였다.
연이는 웃으며 말했다.
“흐흐. 그래.
그럴 줄 알았어.”
✦
연이가 다시 앉아 손을 내밀었다.
“나 새로 하는 사업 잘되게,
화이팅 빔 해줘. 냠냐미!”
냠냐미가 연이에게 가까이 왔다.
화이팅 빔!
(냐아옹냐!)
냠냐미가 앞발을 들어,
연이 손에 콩. 찍었다.
앞발이 닿은 손을,
연이가 가슴으로 가져가
꼭 쥐었다.
“고마워.”
연이가 웃었다.
그러다, 작게 말했다.
“...난 네가 정말 좋아.”
둘의 눈이 마주쳤다.
나도 연이가 좋냐미!
(냐아냐옹냐앙!)
연이의 떨리는 눈동자에,
슬픈 빛이 스쳤다.
‘익숙한 기분이 드냐미.’
냠냐미는 잠깐 고민에 빠졌다.
‘클로버를 지금 가지고 올까냐미...’
냠냐미가 스케치북 쪽을 봤다가
다시 연이를 봤다.
‘종종 온다고 했으니
가장 예쁠 때 주자냐미.’
‘아직 덜 말랐냐미.’
✦
연이가 목소리에
힘을 주며 말했다.
“나 없을 때, 카드.
잊지 않았지?”
양 엄지와 검지를 펴서
네모를 만들었다.
“그거 진짜 되는 거야. 크크.”
냠냐미는 카드 위로 덮인
플라타너스 잎을
고개로 길게 가리켰다.
(벨소리)
연이의 핸드폰이 울렸다.
“어, 나 가봐야겠다.”
연이가 급하게 일어나며 손을 흔들었다.
“우리 냠냐미
심심하기 전에 올게!”
냠냐미가 돌 뒤를 지그시 봤다.
인사를 마친 연이는
간식 봉지를 두고 멀어졌다.
✦
혼자 남은 냠냐미가
연이가 사라진 골목을 봤다.
‘매일이,
끝났냐미.’
‘연이가 와준 날들이
다 좋았냐미.’
✦ ✦ ✦
그렇게 며칠이 지났다.
달은 매일
조금씩 깎여 나갔다.
✦
원이가 왔다.
“구미묘~
밥 잘 먹었어?”
‘어? 며칠 전에 주운 이후로
간식 봉지가 없네?’
“매번 다 다른 간식이라
보는 재미가 있었는데, 치우고 가셨나.”
원이가 혼잣말처럼 중얼거리고는,
사료를 채웠다.
손이 멈췄다.
‘양이 다시 줄었나?
간식 없는데도, 먹던 만큼만 먹었네.’
원이는 갸웃하며 사료를 마저 채웠다.
그리고 얌얌이집 지붕 위
낙엽을 털어냈다.
✦
정이도 왔다.
아침 달리기 마지막 바퀴에,
들렀다 가는 것이 일상이 되었다.
정이가 골목 입구를 봤다.
‘요즘은 조용하네.’
정이가 말없이 냠냐미 옆에
쪼그려 앉아 주먹을 내밀었다.
냠냐미는
오늘도 화이팅 빔이냐미~
(냐아옹냐~)
하면서 주먹을 콩 해주었다.
정이는 웃으며
다시 일정하게 멀어졌다.
✦
다들 그렇게
올 수 있을 때 와서,
있고 싶은 만큼
곁에 있다가 떠났다.
✦
혼자 남은 냠냐미는
골목 입구를 쳐다보았다.
‘소중한 마음을
많이 받고 있냐미.’
‘내가 무엇을
해 줄 수 있을까냐미.’
방석 위로 올라가
앞발을 모으고,
눈을 감았다.
난 복도 많냐미.
✦ ✦ ✦
어느 날,
아침 달리기 마지막 바퀴를 돌던 정이와,
출근 전 들른 원이가
골목 입구에서 마주쳤다.
“어. 원이 씨, 안녕하세요.”
“안녕하세요. 정이 씨. 오랜만이에요.”
둘은 인사하고,
나란히 냠냐미 곁에 앉았다.
냠냐미가 둘 사이에서
꼬리를 살랑였다.
먼저 입을 연 건 원이였다.
“연이 씨, 요 며칠 안 보이네요.
사업 시작하신 걸까요?”
“그러게요. 진행되는 분위기던데,
초창기니까... 아무래도 바쁘실 듯해요.”
“근데 연이 씨는 딱 본인 스타일이
있으셔서 왠지 잘 하실 것 같아요.”
“맞아요. 감각이 있으시니까.”
“연이 씨 잘 되셨으면 좋겠다.”
둘은 더 묻지 않았다.
냠냐미가 둘을 번갈아 봤다.
원이랑 정이가
오늘도 있으니까 좋냐미. 히히.
그리고 스케치북을 봤다.
‘바쁜 건 좋은 거냐미.’
✦ ✦ ✦
밤이 깊었다.
냠냐미는 방석 위에서 잠들었다.
고롱고롱.
✦
큰 나무 아래였다.
가지가 길게 늘어진,
커다란 나무.
잎이 바람도 없이,
너울너울 흔들렸다.
그 아래
누군가
앉아 있었다.
얼굴은 보이지 않았다.
형체만
어렴풋했다.
누군가가
입을 움직였다.
소리는
나지 않았다.
입은 분명 움직이는데,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무슨 말인지
알 수 없는데도.
아주 오래 알던 사이처럼
장면이 낯설지가 않았다.
냠냐미도,
입을 움직였다.
목소리는 나오지 않았지만,
무언가를 따라 말하고 있었다.
큰 나무가 내려다봤다.
잎이 바람도 없이 흔들렸다.
✦ ✦ ✦
!!
냠냐미가 눈을 떴다.
방석 위였다.
✦
꿈이
빠르게 흐릿해졌다.
큰 나무도.
마주 앉은 누군가도.
소리 없던 입 모양도.
순식간에 사라졌다.
✦
또. 그 나무냐미.
잡으려 하면
사라지는 자리였다.
알 수 없는 따뜻한 느낌이
가슴에 남아 있었다.
✦
냠냐미가 자리에서 일어나,
달을 올려다봤다.
‘며칠 사이 더 말랐냐미.’
✦
카드 위의 잎도
끝이 갈색으로
말라 가고 있었다.
✦
바람이 불었다.
마른 잎 하나가,
골목 바닥을 굴러갔다.
바람이 지나간 자리에
수풀이 늦게 흔들렸다.
✦
냠냐미는 굴러가는 잎을 보다가
앞발을 모으고, 눈을 감았다.
✦
...연이가. 먼 곳에서도,
애쓰지 않아도 행복하게 해주세냐미
...원이가. 자기가 얼마나
좋은 사람인지 알게 해주세냐미
...정이가. 가끔씩 멈추는 것도
괜찮다는 걸. 느끼게 해주세냐미
✦
누가 듣는 것도,
들릴 리도 없었다.
그래도 냠냐미는,
매일 조금씩.
자신이 사랑하고,
자신을 사랑하는 존재를 위해 빌었다.
하현달이,
그 마음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
기도를 마친 냠냐미는 스르르 잠들었다.
방석 위로 내려앉은 달빛이,
작은 앞발 끝을 잠깐, 통과하는 듯 보였다.
✦ ✦ ✦
11장 「낮에 뜬 하현달」 끝 · 12장에서 계속
문우리
별보러갈래
반창고
세일러서니
앗
샤니
차니맘
촉새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