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장 비 오는 날

별이 보일 리 없는 하늘에,
푸른 기가 도는 빛줄기 하나가 구름을 가르고 길게 흘렀다.

✦ ✦ ✦

하늘이 낮았다.

공원의 풀잎들이 바람도 없는데 조금씩 눌려 있었다.
습기가 땅까지 내려와 앉아 있는 것 같았다.

공원 한쪽 구석,
하얀 고양이 한 마리가 코를 킁킁거리며 담벼락을 따라 걷고 있었다.

짙고 깊은 눈동자, 바짝 올라간 세 가닥의 속눈썹, 분홍빛 볼.

풍성한 꼬리털이 뒤를 따라 사락사락 흔들렸다.
목에는 하늘색 리본이 묶여 있었다.
리본 아래에는 방울이 달려 있었다.
걸음 사이로 방울이 하나, 그리고 하나가 더 보였다.

세 개의 방울들은 모두 울리지 않았다.

하얀 고양이는 기운이 바닥났는지, 삐걱거렸다.
고양이는 걸음을 멈추고, 리본 맨 앞쪽에 드러난 방울을 앞발로 건드렸다.

톡.

방울이 경첩처럼 조용히 열렸다.

방울 안에는 작고 동그란, 초코볼 같은 것이 두 개 반짝였다.
세 개는 벌써 먹었는지 비어 있었다.

어디보자냐미... 남은 냠냠볼이...
새 방울에 다섯, 비상용 방울에 하나, 지금 방울에 둘.

고양이는 앞발을 오므렸다가 폈다가 했다.

힝. 아침, 저녁으로 하나씩 아껴 먹었는데
이제 여덟 개밖에 안 남았냐미.

고양이는 주저하는 듯했지만,
냠냠볼 하나를 들어 올리며 말했다.

이럴수록! 힘을 내야 갈 길이 보이는 거냐미!

냠냠볼은 고양이 입속으로 쏙 들어갔다.

겉에서부터 달콤하고 부드러운 화이트초콜릿이 혀 위에서 사르르 녹았다.
그 안쪽으로 씁쓸한 파란 파우더가 혀끝을 스쳤다.
그리고 다크 초콜릿의 달콤쌉싸름하고 깊은 맛이 입안을 가득 채웠다.
그 속에서 천천히 녹아 흐르는 캐러멜이 달고 진득했다.
마지막으로 씹히는 너트는 고소하고 단단했다.

꿀꺽.

따뜻한 기운이 실처럼 몸 안을 흘렀다.
푸른 기운이 고양이 주위를 일렁였다.
삐걱거리던 몸이 조용해졌다.

하~ 살 것 같냐미!!

고양이는 방울에 하나 남은 냠냠볼을 조용히 바라보았다.

‘방울에서 마지막 냠냠볼은 비상용으로 따로 모아둬야 하냐미...’

고양이는 한참 들여다보던 냠냠볼을 진지한 표정으로, 조심스럽게 들어 올렸다.

냠냠볼이 방울에서 떨어진 순간,
텅 빈 방울은 가장자리부터 희미한 푸른빛을 내더니 소리 없이 스러졌다.

고양이는 이 상황이 익숙한 듯 가장 깊숙이 숨겨둔 비상용 방울을 열었다.
안에는 아껴둔 냠냠볼 하나가 이미 들어 있었다.

만일의 만일도 생각하는 치밀함...
이것이 절제력이냐미!

고양이는 들고 있던 냠냠볼을 방울 안에 넣었다.
비상용 방울 안에 냠냠볼은 두 개가 되었다.

딸각.

정말 정말 아껴서 먹어야 하냐미.

고양이는 비상용 방울을 털 깊숙이 꼭꼭 숨기며 중얼거렸다.

이건 없는 거냐미.
이건 없다고 생각해야 하냐미.

고양이는 리본 바로 앞으로 나온 새 방울을 열었다.
냠냠볼이 다 차 있었다.

고양이는 잠시 머뭇하다, 고개를 도리도리 저었다.

저 두 개는 없는 거냐미.
이제 식량은......
이 다섯 개뿐인 거냐미.

하얀 고양이는 한참 동안 다섯 개의 냠냠볼을 들여다보았다.

그리고 뚜껑을 닫았다.

다음 날,
하늘이 더 낮아졌다.

바람도 없는데 나뭇잎이 뒤집혀 있었다.
비를 품은 공기였다.

‘히잉. 벌써 배고프냐미...’

고양이는 오늘도 그저 발 닿는 대로 터덜터덜 걸었다.

‘길이 어째 다 똑같이 생겼냐미... 왔던 길도 뒤돌면 모르겠냐미...’

어느새 고양이는 공원 산책로에서 한참 벗어나 있었다.

눈앞에는 낯선 수풀이 있었다.

그 뒤로, 처마처럼 살짝 튀어나온 낮은 담벼락 아래
커다란 주황색 지붕이 보였다.

!!! 저건! 집 아니냐미??!

중형견 한 마리 들어가기에도 넉넉한 크기였다.
커다란 지붕 한편에는 만든 지 오래되지 않은 듯한 명패가 달려 있었다.

「얌얌이집」

하얀 고양이는 그 앞에 멈춰 섰다.

얌얌이집???

고양이는 잠시 생각에 잠겼다.

냐미의 집을 잘못 쓴 거 아니냐미?

고양이는 두리번거리며 안을 들여다보았다.

사료 그릇에 누군가 채워둔 듯한 사료가 적당히 담겨 있었다.
물그릇에 깨끗한 물도 넘치지 않게 채워져 있었다.

호오...

다시 명패를 올려다보는 고양이의 입꼬리가 위로 쓱 올라갔다.

이름부터가 나를 위한 집이냐미~!!

고양이는 당당하게 안으로 들어갔다.

이 몸이 오셨냐미~!

하얀 고양이는 정신없이 사료를 먹고, 물을 마셨다.

‘바닥도 단단하고, 잘 막혀 있냐미.
이름은 살짝 틀렸지만 뭐, 이만하면 합격이냐미~’

고양이는 새 방울에서 다섯 개의 냠냠볼 중 하나를 꺼냈다.

오늘의 냠냠볼은~ 후식이냐미~~!

신이 난 고양이는 엉덩이를 좌우로 씰룩거렸다.

거처와 식량이 생긴 고양이는 처음으로 여유를 부렸다.

고양이는 왼앞발에 냠냠볼 하나를 올리고,
다른 쪽 앞발을 높이 들었다.
그리고 심호흡을 하며 정중앙을 탕— 하고 내려쳤다.

내려다보는 고양이의 눈이 동그랗게 커졌다.

냠냠볼은 정확히 반으로 갈라졌다.

오오~~! 냐미의 새로운 능력이냐미?! 키키.

잘린 단면 사이로 늘어진 캐러멜과 너트가 드러났다.
고양이는 주변에 아무도 없는 것이 아쉬웠지만 어깨가 한껏 올라갔다.

후후

고양이는 반쪽을 먹었다.

오물오물.

달달하냐미~

고양이 주위로 푸른 기운이 일렁였다.
나머지 반쪽도 낼름 먹었다.

냐냐~ 몸이 따뜻해지냐미

따뜻한 기운이 배 아래까지 천천히 내려갔다.

조금씩 빗방울이 뚝, 뚝 떨어지기 시작했다. 가는 비였다.
고양이는 집 밖으로 고개를 내밀었다.

비가 오냐미~~

고양이는 몸을 일으켰다.

집도 생겼으니 산책하기 딱 좋겠냐미~

빗물이 고인 흙바닥을 피해 조심조심 걸어 나왔다.

고양이는 빗속을 걸으며 흥얼흥얼거렸다.

배가 고프면 떠돌이냐미~
배가 부르면 산책이냐미~

떠돌이와~ 산책은~ 꽃잎 한~장 차이냐미~

이 몸은 돌아갈 집이 있냐미~
홈 스윗홈이냐미~ 냐냐~

가벼워진 마음으로 산책을 실컷 즐긴 고양이는
빗방울이 굵어지기 전에 왔던 길을 되짚어 돌아왔다.

고양이는 입구에서 멈췄다.
집 안에 못 보던 방석이 하나 놓여 있었다.

오잉? 원래 있었냐미?

고개를 갸웃하며 앞발로 툭툭 건드리니 폭신했다.

오오 포근하냐미~ 좋냐미 냐냐~

고양이는 방석 위에 올라가 한두 바퀴 원을 그리다가 천천히 웅크렸다.
코끝이 바닥에 닿을 듯 말 듯 가까워졌다.
앞발이 접히고 뒷발이 따라 접혔다.

고양이는 비상용 방울을 한 번 더 열어 확인했다.

톡.

‘두 개 맞냐미. 잘 있냐미.’

딸각.

고양이는 앞발을 모았다.

‘오늘도 감사한 하루냐미.’

고양이의 눈이 스르르 감겼다.

구름 사이로 달이 비쳤다.
가늘고 날카로운 초승달이었다.

고양이는 곤히 잠들었다.

멀지 않은 곳에서, 누군가 조용히 자신을 지켜보고 있다는 것을
고양이는 알지 못했다.

✦ ✦ ✦

커튼 끝처럼 착 떨어지는 단발머리. 귀에 딱 붙은 작은 동그란 귀걸이.
몸과 옷 사이에 여유가 있어 보이는 옷차림.

‘내일 면접인데... 머리가 복잡하네.’

원이는 망원경을 들고 여느 때처럼 하늘을 올려다봤다.

‘역시, 여기가 좋다.’

정확히 기억은 나지 않지만 어느 순간부터,
하늘을 올려다보면 마음이 차분해졌다.

낮에는 자유롭게 흘러가는 구름을 보고,
밤에는 희미하게 빛을 내고 있는 별을 찾아 응원해주는 것이 좋았다.

‘힘내...! 잘하고 있어...! 난 네가 빛나는 게 보인다구!’

특히 광해가 많고 북적이는 곳보다,
너무 서두르지 않는 달의 차고 기움을
조용하게 관찰할 수 있는 이 공원 벤치를 가장 좋아했다.

하늘은 아무것도 묻지 않았다.

망원경 하나 들고 나오면 그걸로 충분한 밤들이었다.

며칠 전부터 원이는 공원 어딘가에서
어떤 노랫소리를 들었다.

멜로디라고 하기엔 너무 작고,
무음이라기에는 가락이 느껴지는 소리였다.

소리가 나는 방향을 따라가다 보면
노래가 끝나는 자리 근처엔 꼭 하얀 고양이가 있었다.

목에 하늘색 리본을 맨, 꼬리털이 퐁실한 작은 고양이였다.

다가가면 도망갈 것 같아서 원이는 늘 멀찍이 망원경으로만 봤다.

이상했다.
이 하얀 고양이를 지켜보는 것뿐인데
원이는 기분이 금방 좋아졌다.

노랫소리를 따라가다가 고양이를 놓친 어느 날,
원이의 망원경에 커다란 주황색 지붕을 가진 집 하나가 눈에 들어왔다.

담벼락 아래 수풀 속에 가려진 그 집은 개집치고는 공들인 흔적이 있었다.

‘오 이런 곳에 집이 있네?’

원이는 하얀 고양이가 이 집에 들어가 쉬는 모습을 상상했다.

원이는 벌떡 일어났다.

‘이 근방에서 계속 서성였으니,
냄새를 맡으면 찾아올 거야.’

편의점에서 사료와 물, 그리고 빈 그릇 두 개를 사 들고
그 집 앞으로 갔다.

「얌얌이집」

‘얌얌이라는 개가 쓰던 집이었나 보네.
설마 이런 곳에, 아직 주인이 있는 집은 아니겠지...?’

원이는 집 안의 먼지를 툭툭 털어냈다.

‘생각보다 깨끗하네.’

집 안에는 작은 라디오와 스케치북, 크레파스가 놓여 있었다.

‘...엥?’

원이는 잠시 갸우뚱했다.

‘새 거 같은데. 같이 버린 건가..?
흠. 혹시 모르니 옆에 잘 치워놔야겠다.’

원이는 안에 있는 스케치북과 크레파스를 안쪽 구석으로 정리해 공간을 넓게 만들고,
라디오는 입구 쪽에 붙여 두었다.

방금 사 온 밥그릇과 물그릇을 놓고 사료와 물을 채워두었다.

‘어서 이 집을 발견해서 편하게 쉬면 좋겠다.’

그 이후로 원이는 더 자주 공원에 나왔다.
망원경을 들고 벤치에 앉아 하늘을 보는 취미는
자신도 모르게 그 하얀 고양이를 지켜보는 것으로 바뀌고 있었다.

원이는 망원경을 들고 공원 벤치에 앉았다.

구름 낀 하늘에는 노을이 졌다.

‘아, 방석이라도 하나 넣어줄 걸 그랬나.
집에 안 쓰는 폭신한 방석 하나 있는데.’

원이는 잠깐 고민했지만 노랫소리를 놓칠까 귀를 기울이며 자리를 지켰다.

‘다음에 가서 넣어 두고 와야겠다.’

이때, 기다리던 소리가 들렸다.

'여기예요~'라고 알려주는 듯한 희미한 노랫소리였다.

원이는 얼른 소리가 나는 방향으로 망원경을 휙 돌렸다.

담벼락 모퉁이 쪽에,
하얀 고양이가 사료와 물을 채운 집 앞에 서 있었다.

고양이는 입구 앞에서 작은 앞발을 든 채 망설이듯 하다가,
그 안으로 들어갔다.

원이는 숨을 참았다.

낮게 내려앉아 있던 공기는 가는 비가 되어 부슬부슬 내리기 시작했다.
고양이가 밖으로 나와 빗속을 걷는 게 보였다.

“어머, 지금이야.”

원이는 공원에서 가까운 집으로 단숨에 뛰어가
솜이 적당히 채워진 방석을 하나 챙겨 돌아왔다.

고양이가 산책 나간 사이, 원이는 방석을 집 안에 조심스럽게 밀어 넣고
얼른 자리로 돌아와 망원경을 들었다.

자리에 돌아온 지 얼마 되지 않아 고양이가 집으로 돌아왔다.

‘휴우. 바로 다녀오길 잘했다.’

고양이는 입구에서 잠깐 멈추더니 앞발로 방석을 툭툭 건드렸다.
그리고 그 위에 올라가 웅크렸다.

어느새 비가 그치고, 구름 사이로 하늘이 열렸다.

열린 하늘에서 별똥별 하나가 길게 흘렀다.

여느 밤이었다면 한참을 올려다봤을 테지만,
원이는 방석 위에 조용히 웅크린, 작고 하얀 고양이에게서 눈을 뗄 수 없었다.

원이는 자리에서 일어나 기지개를 켜며 하늘을 보았다.

구름이 걷힌 자리에 초승달이 떠 있었다.
막 차오르기 시작한, 가느다란 달.

원이는 그 달을 평소보다 오래 보았다.
내일 면접 생각이, 처음으로 나지 않았다.

원이는 뛰는 심장소리가 들릴까
소리 내지 않고 웃었다.

원이는 알지 못했다.
그 집을 조용히 응시하는 또 하나의 시선이 있다는 것을.

✦ ✦ ✦

어두운 골목길,
푸른 기가 도는 회색 털.
에메랄드빛으로 빛나는 눈.

회색 고양이는 머리가 좋은 길고양이였다.

어느 골목에서 밥을 얻어먹을 수 있는지,
어떤 사람에게 언제 다가가면 쫓겨나지 않는지 알고 움직였다.

한 열 살 정도 되어 보이는 소녀가 혼자 슈퍼마켓 앞에 서 있었다.
누군가를 기다리고 있는 듯했다.

회색 고양이는 소리 나지 않는 걸음으로 소녀에게 다가갔다.
그리고 소녀의 발 앞에 가서 앉아 울기 시작했다.

(얌—)

“어머 깜짝이야!”

소녀가 동그래진 눈으로 회색 고양이를 내려다봤다.

(얌—얌—)

“고양아 배고파?”

소녀는 쭈그려 앉아서 손을 내밀었다.

고양이는 냄새를 맡는 척하며 볼을 비볐다.
소녀의 동그란 눈은 가느다란 초승달이 되었다.

잠시 후 슈퍼마켓에서 나온 소녀의 손에는 고양이 캔이 들려 있었다.
고양이는 얌전히 받아먹었다. 소녀가 작은 손으로 박수를 쳤다.

“얌얌~ 맛있게 먹네. 얌얌이다, 얌얌이.”

그날부터 이름 없이 돌아다니던 길고양이는 이름과 집이 생겼다.

소녀의 집은 따뜻했다.

햇빛이 잘 드는 창가, 규칙적으로 나오는 밥,
엄마의 배에 귀를 대고 동생의 발소리가 들린다며 좋아하는 소녀가 있었다.

소녀의 가족은 함께 얌얌이를 위한 집을 만들어주었다.
지붕을 주황색으로 칠하고, 안에 도톰한 담요를 깔아 주었다.
마지막으로 소녀가 직접 쓴 이름표가 입구에 걸렸다.

「얌얌이집」

얌얌이는 필요할 때만 소녀에게 갔다.
보통은 창밖을 쳐다보며 시간을 보냈다.

그러다가 티비 소리가 들리면 자리를 그리로 옮겼다.
소녀의 엄마는 기침을 하며 조용히 자리를 피했다.

소녀는 학교 앞 좌판에서 흘러나오는 라디오 소리를 듣고 멈췄다.

‘얌얌이가 좋아하겠다. 엄마가 기침하시니까
내 방에서 틀어줘야지 히히.’

“이거 얼마예요?”

소녀는 작은 라디오를 샀다.

얌얌이는 조금씩 소녀가 눈에 닿는 곳에 앉기 시작했다.

소녀가 학교에서 돌아올 시간이 되면
얌얌이는 현관 앞에 앉아 소녀의 발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소녀는 가장 아끼는 인형을 가지고 왔다.

“얌얌아, 이거 내가 제일 좋아하는 인형이야. 집에 넣어둘게.
내가 학교에서 늦을 때는 얘랑 같이 있어. 외롭지 않을 거야.”

(야암—)

소녀는 학교에서 돌아오면 꼭 얌얌이부터 찾았다.

“얌얌아 나왔어! 오늘 많이 안 울고 잘 있었어~?!”

소녀는 집에 들어오면 가방을 내려놓고,
책상 위에 놓인 작은 라디오를 켰다.

그러면 얌얌이가 집 안 어디 있다가도 그 앞에 와서 앉았다.
머리를 기울이고 자기 자리처럼 앉아서 눈을 감고 가만히 그 소리를 들었다.

주파수가 바뀔 때마다 얌얌이의 귀가 따라 움직였다.

뉴스가 흐르기도 했고, 음악이 흐르기도 했고,
어디 먼 나라의 거리가 흐르기도 했다.

얌얌이는 무엇이 흐르든 끝까지 들었다.
가끔 방송이 끊길 때 나는 지직거림마저, 오래 들었다.

어느 깜깜한 밤, 얌얌이는 창가에서 길게 울었다.

(얌———)

그 소리를 듣고 골목 어딘가에서 길고양이들이 저마다 소리를 냈다.
하나가 울면 하나가 받았다.

(야옹, 야아옹, 야아아옹.)

밤이 깊어 고요한 만큼 소리는 커졌다.
어린애 같은 고양이 울음소리가 밤공기 사이를 윙윙댔다.

술을 먹었는지 비틀대며 지나가던 노인이 혀를 찼다.

“에휴 시끄러워. 나비탕 장수는 뭐 하나,
길나비들이 잡아가 달라고 노래를 하는데 안 잡아가고.”

소녀가 얼른 얌얌이 귀를 두 손으로 막으며 끌어안았다.

“얌얌아, 듣지 마. 듣지 마.
고양이도 가족인데 탕을 끓여 먹다니, 너무해.”

소녀는 얌얌이의 귀에 대고 속삭이듯
오늘 학교에서 있었던 이야기를 늘어놓기 시작했다.

“나 오늘 쉬는 시간에 달리기 시합했는데
내가 남자애들 다~~ 이겼다?!”

선생님이 어쨌고, 짝꿍이 어쨌고.

얌얌이는 소녀에게 기대었고, 소녀는 까르르 웃었다.
얌얌이는 점점 이런 하루에 익숙해졌다.

그런 하루가 끝난 건 소녀의 엄마 배가 눈에 띄게 불러오기 시작하면서였다.
어른들의 목소리가 낮아졌다. 얌얌이를 보는 시선이 달라졌다.

파양이 결정된 날, 소녀는 얌얌이를 끌어안고 오래 울었다.
얌얌이는 소녀의 냄새를 맡았다. 그리고, 천천히 볼을 비볐다. 괜찮아, 라고 말하듯이.
소녀는 더 많이 울었다.

며칠 뒤 낯선 사람이 왔다.

웃는 얼굴이었지만 눈이 웃지 않았다.
목소리가 다정했지만, 손이 물건을 다루듯 움직였다.
과장될 만큼 동물을 사랑하는 척하는 사람 특유의 냄새가 났다.

‘저 사람에게 가면 안 된다.’

소녀의 울음소리 너머로 이동장이 닫혔다.

낯선 장소로 이동하면서 크게 떠드는 전화 소리가 새어 나왔다.

나비탕.

오랫동안 길에서 지냈던 몸이 먼저 반응했다.
그 단어를 듣는 순간, 온몸의 털이 바짝 섰다.

어디로 가는지도 몰랐지만,
문이 열리는 순간을 기다렸다.

기다리던 그 순간,
얌얌이는 망설임 없이 뛰어내렸다.

앞이 보이지 않을 만큼 비가 쏟아지고 있었지만 상관없었다.
뒤돌아보지 않고, 어두운 골목을 쉬지 않고 달렸다.
푸른빛을 띠던 회색 털이 빗물에 흠뻑 젖었다.
에메랄드빛 눈이 자동차 헤드라이트처럼 어둠 속에서 빛났다.

그날 이후로 얌얌이는 사람에게 가까이 가지 않았다.

한편, 소녀의 엄마는
출산일이 다가오자 얌얌이집을 분리수거장에 내놓았다.

“엄마, 다시 얌얌이 데려오면 안 돼요?”

“얌얌이는 그냥 길고양이였잖니.
길고양이들은 길생활이 익숙해서 도망쳐서 돌아가는 경우도 많다고들 하더구나.
우리는 어서 더 귀여운 동생을 맞이할 준비를 해야지.”

소녀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소녀는 그날 밤 몰래 나와 얌얌이집을 옮겼다.

공원 안쪽, 산책로에서 한참 벗어난 낮은 담벼락 아래.
수풀이 한 겹 가려주는 자리였다.

소녀는 흐르는 땀을 닦으며 집을 조금 더 안쪽으로 밀었다.

“얌얌이보다 다른 고양이가 먼저 찾으면 어쩌지?
흠. 얌얌이가 오면 잘 비켜줘야 할 텐데.”

소녀는 손으로 지붕을 쓸며 안을 들여다보았다.
헝겊 인형이 그대로 있었다.

소녀는 잠깐 멈췄다.
그리고 인형을 꺼내 품에 안았다.

“너는 털도 안 빠지고, 밤에 갑자기 울지 않으니까
다시 데려가도 혼나지 않겠지?
...
너라도 집에 가자. 동생이 곧 나올 거래.”

소녀는 쉽게 자리를 뜨지 못했다.

“얌얌아, 미안해... 행복해야 해.”

소녀는 몇 번씩 돌아보며 자리를 떠났다.

잠들지 못한 소녀는 작은 가방을 메고 다시 그 집 앞에 왔다.

소녀는 얌얌이집 앞에 쪼그려 앉아 가방을 열었다.
그리고 안에서 스케치북과 크레파스를 꺼냈다.

“얌얌아 나 어제 달리기 대회에서 1등 했다?
그래서 이거 받았어. 색깔 많지?”

...

“친구들이 그러는데 엄청 좋은 거래.”

...

소녀의 시선이 빈 인형 자리에 닿았다.

...

소녀는 가방에서 무언가를 하나 더 꺼냈다.

“이것도... 두고 갈게.
네가 좋아하던 작은 라디오.”

얌얌이가 학교에서 돌아온 소녀 옆에서 가만히 듣고 있던 그 라디오였다.

“엄마 몰래 종종 보러 올게.”

‘얌얌이는 인형보다 라디오를 더 좋아할 거야.’

소녀는 남겨진 집을 향해 손을 흔들고, 또 흔들었다.

따뜻한 빛이 창문 너머로 새어 나왔다.
소녀는 인형을 꼭 안은 채 그쪽을 향해 걸었다.

하늘에는 그믐달이 떠 있었다.
조금만 더 있으면 아무것도 남지 않을 것처럼
손톱보다 가늘게, 거의 사라지기 직전의 달이었다.

담벼락 아래, 주황색 지붕의 집이 혼자 남았다.

✦ ✦ ✦

그리고 지금.

그 집을 바라보는 두 개의 에메랄드빛이,
어둠 속에서 잠깐 빛났다가 사라졌다.

✦ ✦ ✦

1장 「비 오는 날」 끝 · 2장에서 계속